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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한 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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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은 어떤가. ‘수전노 국가’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진 않은가. 세계 13위 경제대국이라는 자부심에 어울리는 기여를 국제사회에 하고 있는가. 국가의 품격을 생각한다면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선진국은 거저 되지 않는다. 경제력에 걸맞은 품격을 갖춰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06년 한국이 다른 나라를 위해 쓴 돈은 4억5000만 달러(실적 기준)였다. 무상원조에다 유상원조, 다자간 원조를 다 합한 공공개발원조(ODA) 액수다. 같은 해 227억 달러를 쓴 미국이나 100억 달러 이상을 쓴 영국·일본·프랑스·독일에 비할 것은 물론 아니다. 경제력의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득 대비 원조 비율이다. 국민총소득(GNI) 중 몇 %를 ODA에 썼느냐는 것이다. 2006년 OECD 회원국 평균은 0.3%였다. 한국은 0.05%에 불과했다. 2000원 벌어 겨우 1원을 남을 위해 썼다는 계산이다. OECD 회원국 중 거의 꼴찌 수준이다.

원조의 질적 구성도 문제다. OECD 국가들이 공여하는 ODA의 90% 이상은 무상원조다. 한국은 절반 정도만 무상원조고, 나머지는 유상원조다. 빌려준 것이다. 그것도 한국 기업이 제공하는 물품만 구매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인 구속성 원조가 대부분이다. 일본은 세계에서 셋째로 많은 돈을 대외원조에 쓰면서도 구속성 유상원조 비중이 커 ‘경제동물’ 소리를 들었다. 일본도 요즘은 무상원조로 돌아섰다.

한국은 한 세대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다. 한 세대 만에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바뀐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460억 달러(2005년 불변가격)에 달하는 원조가 기적의 씨앗이 됐다. 한국은 국제사회로부터 혜택을 가장 많이 본 나라 중 하나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경제규모와 외교역량에 걸맞게 ‘기여외교’를 펴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ODA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산업화·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로 가기 위한 열쇠 중 하나로 ODA를 잡은 것은 제대로 본 것이다. 하지만 말로만 해서는 소용이 없다.

이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구체적 목표를 공표할 필요가 있다. 7월 일본 홋카이도에서 열리는 선진 8개국(G8) 정상회담이 좋은 무대가 될 수 있다. 주최국 특별초청으로 G8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길에 좀 더 과감한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라는 것이다. 유엔이 2015년 목표치로 설정한 0.7%까지는 안 돼도 최소한 OECD 회원국 평균치인 0.3%를 임기 내 달성하겠다는 정도는 돼야 한다.

우리도 어려운데 무슨 원조냐고? 발상을 바꿔야 한다. ODA는 미래를 위한 전략적 투자다. 한국의 개발 경험을 모델로 삼으려는 나라들에 개발의 노하우와 함께 ODA를 제공한다면 한국의 위상은 크게 올라갈 것이다. 코리아를 마음의 친구로 여기는 나라도 많아질 것이다. 후손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는 것만큼 확실한 투자는 없다. 국가의 품격과 미래를 생각한다면 대외원조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