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딴소리 좀 들읍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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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요즘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정부 안팎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일견「그런대로 조율(調律)이 잘 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경기(景氣)는 확장 국면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물가는 비교적 안정돼 있다.무엇보다 경제부처간 또는 정부와 업계 사이에 별로「소리」가 나지 않는다.
아주 간혹 재계(財界)쪽에서 「조그만」소리가 나오는 듯 싶다가도 금세 수그러들고 만다.정부내에서는 그나마도 없다.
이처럼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통상 두가지 경우다.서로 죽이아주 잘 맞거나 아니면 어느 한쪽이 워낙 주눅들어 아예 말도 못꺼내는 경우다.우리의 현상(現象)은 어느 경우일까.불행히도 후자(後者)쪽이 아닌가 싶다.
한 예로 최근의 경기 해석과 진단에 대해 정부내에서 전과는 달리 「다른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모두의 진단이 비슷하기 때문이라면 걱정할 일은 아니다.그러나 사석(私席)에서는 이런 저런 다른 소리들이 나오는 걸 보면 반드 시 그런 것만은 아닌데 누구 「눈치」를 보는지 드러내놓고 말을 안하는 것이다. 기업인들도 마찬가지다.산업정책등에 대해 분명히 정부와 생각이 다른 것 같은데도 재계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몇번 당해서인지 괜히 입바르게 말을 꺼냈다가 「불경죄(不敬罪)」에 걸려 혼쭐이 나느니 가만있는 게 본전이라도 한다는 판단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현상은 재정경제원이란 「거대 부처」가 등장하고 재경원 안팎에도 개성(個性)강한 사람들이 포진한 몇달 전부터 심해졌다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다.일각에서는 더 근본적인 원인을 현 정권의 통치 스타일에서 찾기도 한다.이런 지적이 맞는지,또 각종 현안에 대해 어느 쪽의 진단과 처방이 옳으며 누가 그른지 여부는 다음 문제다.
무조건 자기 목소리만 높이는 분위기는 당연히 경계돼야 한다.
하지만 최소한의 「체크 앤 밸런스」도 없고,활발한 의견 개진이눈에 띄지 않는 경직(硬直)된 조직과 사회에서는 창의성이나 생산성이 나올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일방적인 지시와 한 쪽의 독주(獨走)만 있다고생각하는 조직에서는 속으로 곪아들어가는 불만만 쌓이게 된다.어느 전직 경제장관의 말이 생각난다.『세계화든,자율화든 눈치보느라 할 말도 못하는 분위기가 없어져야 가능하다』 고-.
金 王 基 경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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