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사랑하는공간>텃밭이 보이는 거실 김은경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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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른 아침이면 북한강의 물안개가 꿈결처럼 피어오르고 낮이면 앞마당과 텃밭에 봄볕이 축복처럼 내려앉는 경기도양평군 서종면문호리에 자리잡은 연보라색 지붕의 단층 슬레이트 집.
수려한 풍광도 풍광이려니와 지난 93년 방영된 주말 연속극 『아들과 딸』의 야외 촬영 장소로 더욱 유명한 이 곳에 김은경(金恩璟.40)씨가 도시에서의 교사 생활을 마감하고 새로운 둥지를 튼 것은 지난해 4월.
일제시대 공회당 건물이었으나 해방후 주택으로 쓰이다 거의 폐가가 되다시피 한 것을 1천만원에 구입,내부구조만 바꿔 새로 치장했다.30여평 대지의 이집은 8평 남짓한 거실을 비롯해 안방과 화장실이 딸린 안채,4평 남짓한 방 하나가 전부인 별채 등 2동(棟)으로 이뤄져 있다.울타리가 따로 없어 집과 텃밭이바로 연결돼 자연속에 편안히 안겨 있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의 설렘이 아직도 배어있는 金씨의 거실은 서까래와 대들보가 훤히 드러난데다 천장과 벽면은 도자기 흙으로 마감돼 있어 실내에서도 들이나 산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러운게 가장 큰 특징.
게다가 질 항아리에 가득 담긴 들꽃과 집 주변에서 캐다 작은컵에 심은 이름 모를 야생화가 정겨움을 더해주는 가운데 서쪽으로 난 여닫이 창문을 열면 유유히 흐르는 북한강이 바로 손에 잡힐 듯 다가와 푸근하기 이를데 없는 정취를 안 겨준다.
『서울에서 나서 서울에서만 죽 생활했어요.성격도 활달해 친구도 많은 편이고 굳이 전원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평소에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어느날 수업에 들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이게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어 일단 서울이 아닌 곳 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이화여대 교육심리학과를 졸업,14년간 몸담았던 중학교 교직을 훌쩍 떠나온 金씨는 친구의 소개로 서울에서 양수리를 지나 청평 쪽으로 15㎞ 쯤 위치한 이 곳에 터를 잡게 됐다.
『내부 장식은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한 친구와 함께 3개월에 걸쳐 했는데 벽난로도 만들고 창문틀은 허물어진 고가(古家)에서나온 재목으로 짜는 등 적은 비용으로 한껏 멋을 낸다고 냈습니다.정식으로 이 일을 하는 사람에게 맡기면 이렇 게 거실을 꾸미는데 평당 2백만원 정도 든다고 해요.화초도 품만 들이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어 경제적입니다.』 아직 인연이 닿는 사람을만나지 못해 미혼이라는 金씨는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해대는 「심심하지 않느냐」「무섭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金씨는 앞으로 생계를 위해 조만간 오가는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공간으로 이 집을 활용할 계획인데『벌써 이름도 「십이월」이라 지어두었다』며 활짝 웃는다.
〈金明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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