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일하는 보람상 수상자 공적-활기찬마을상 文萬福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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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경기도 평택시에서 서쪽으로 20여㎞ 떨어져 있는 평택군창북면어수리「성장작목시범단지」안의 한 현대식 화훼비닐하우스.
채광(採光).온도관리 등 모든 것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1천5백여평의 비닐하우스에서는 백합.카네이션 등 한 해 36만여송이의 꽃이 생산된다.문만복(文萬福.41.경기도평택군현덕면인광리)씨는 이 꽃들을 일본.홍콩 등에 수출해 연간 1억 여원의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외국의 농산물시장 개방압력이 더욱 거세지는 지금 우리농촌이살 길은 과감한 투자와 연구 뿐』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文씨.
그가 바로 21일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가 주관한 제4회 「일하는 보람상」시상식에서 「활기찬 마을상」을 수상한 주인공이다.
文씨가 지금의 입지를 굳히게 된 것은 지난 92년.그로서는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했다.당시 어수리에는 농산물 수입개방에 대비해 50억원의 정부지원으로 「성장작목시범단지」조성이 시작됐다. 文씨는 며칠밤을 새우며 고민한 끝에 4억3천만원의 엄청난시설비를 화훼비닐하우스 조성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다.실패할 경우정부보조 1억7천만원은 그만두고 집 등을 담보로 농협 등에서 얻은 융자금 2억6천만원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게 되는 위험을 무릅쓴 일대결단이었다.92년 「백합수출농가협의회」에 가입해 백합수출의 길을 확보해 놓은 文씨는 93년말 새로 지은 비닐하우스에서 첫 재배한 백합과 카네이션을 일본.홍콩에 수출하던 날 감회의 눈물을 흘렸다.
가난한 집안사정 탓에 서울에서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중퇴해 낙향한 文씨는 72년 간척사업에 손을 댔다가 실패하는 시련을 겪었다.그러나 75년 오동나무농장에 취직해 관상수재배에 관심을 갖게 됐고 83년에는 정부의 화훼재배 권장시 책에 따라 관상수재배를 포기하면서 화훼재배를 시작했다.부인 이상순(李相淳.38)씨와 1남1녀를 둔 文씨는 중학1년생인 아들 재승(宰昇.13)군에게 화훼재배를 잇게 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平澤=姜甲生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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