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조 뭉칫돈이 떠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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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돈이 갈 곳을 못 찾고 있다. 최근 주가와 금리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뭉칫돈이 방향을 잃고 ‘떠다니는 돈’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물가가 불안한 상태여서 급속히 늘어난 단기 부동자금이 일순간 어느 한곳으로 몰릴 경우 거품을 일으키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단기자금이 잠시 머무르기에 적당한 머니마켓펀드(MMF)에는 지난달 8조7000억원가량이 몰린 데 이어 이달에도 7조원이 들어왔다. 특히 이달 중순 이후 하루에 1조~2조원의 자금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경우도 잦다. MMF의 금리는 연 4%로 은행 정기예금 금리보다 낮지만 돈을 빼고 넣기가 자유로운 게 특징이다.

반면 증시 침체를 틈타 지난달 20조원의 자금을 끌어모았던 은행 정기예금 인기는 뚝 떨어졌다. 한때 연 7%에 육박하던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가 최근 연 5% 후반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증시에서 은행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역(逆) 머니 무브’ 현상도 주춤해졌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최고 연 6.5%의 정기예금을 내세워 7조원가량을 끌어모았지만 이달에는 2200억여원을 유치하는 데 그쳤다. 신한은행은 이달 들어 정기예금 잔액이 3200억원 줄었다. 지난달에는 5조5000억원 늘었었다.

이관석 신한은행 PB사업부 부부장은 “지난해 고수익을 경험한 탓인지 고객들이 연 5%대 금리에 만족하지 않는다”며 “부동산에 대한 관심도 연초 잠깐 반짝하다 줄어든 상황이라 MMF 등에 머물고 있는 자금의 상당부분이 증시로 들어갈 기회를 엿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돈은 계속 풀리고 있다. 은행들은 자금난이 해소되면서 지난해 말 바짝 조였던 대출 고삐를 서서히 풀고 있다. 여기에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하락으로 한 달 새 0.6%포인트가량 떨어졌다. 국민·우리·신한·하나·외환·기업·SC제일 등 7개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이달 들어 21일까지 8778억원 늘었다. 설 연휴로 영업일이 12일에 불과했지만 증가 규모는 이미 지난달 수준(8373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12월에는 1229억원 증가했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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