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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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우리는 서로 자유를 추구하기 때문에 외박을 해도 어디 갔다왔느냐고 묻지 않아요.또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해도 간섭 안하죠.그래서 저는 더욱 외로워요.믿음직한 남자가 그냥 저를 꽉 붙들어 주었으면 하고 바라죠.』 채영이 떠오르는대로 조잘거리자 정민수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죠.자유만큼 감당하기 힘든 것도 없으니까요.자유를 누리려면 그만큼 성숙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그렇게 성숙하기란쉽지가 않죠.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자유가 주어져도 도피하는 경향이 있어요.그것을 예리하게 파악한 사람이 에리 히 프롬이죠.
그러나 진정한 성인이면 그러한 자유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민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가볍게 한숨을 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나 지금 서채영씨는 무척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거예요.우리 사회에서는 그만한 자유를 얻으려고 해도 불가능한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이때 채영은 정민수가 지독한 외로움에 빠져있음을 느꼈다.그리고 정민수를 사로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남자가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혼한 남자가 진한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마누라가 신통치 않기 때문이든지,아니면 마누라의 사랑만으로는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다.바로 모성 콤플렉스가 있는 것이다.그래서 채영은 연애할 때 즐겨 써먹던 「칭찬 수법」을 시도했다.바로 민우에게도 써먹었던 수법으로 남자를 그저 칭찬하고 부추겨 주는 것이 다.나이가 들어도 엄마 품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에게는 그저 칭찬해주는 것이 최고다.그러면 외로운 남자들은 대개 신이 나서 그녀만을 필요로 한다.그렇게 시간이 지나고나면 그네들은 채영의 포로가 되고마는 것이다.채영은 그동안 그런 수법으 로 수많은 남자를 자기의 사랑의 포로수용소 안에 가두고 즐겼다.남자들은 나중에는채영의 사랑을 얻기 위해 자살 시도도 하고 심지어는 집 앞에서밤을 새우거나 담장을 뛰어넘어 오기도 했다.성장하면서 못받았던어머니의 사랑을 다시 받게 되자 그네들은 다시는 그 사랑을 놓치지 않으려고 목숨 걸고 채영과의 사랑에 매달렸다.민우가 부성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는 외로운 여자들을 자기의 사랑의 수용소에 가두고 즐겼듯이,채영은 모성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는 외로운 남자들을 자기의 사랑의 수용소 안에 가둬 놓고 즐겼다.채영은 그 수법으로 한번도 외로운 남자들을 놓쳐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채영은 단순히 즐기기 위해 남자들을 가둬 놓은 것은 아니었다.바로 글을 쓰기 위한 체험을 위해서 남자가 필요했던 것이다.그래서 채영은 글에 더이상 도움이 되지 않으면 과감히 남자들을 수용소에서 추방했다.그들이 아무리 악을 쓰고 들어오겠다고 해도 냉정히 거절했다.그들을 모두 관리하기에는 채영의 심신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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