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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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뭐…? 살인사냥!』 민우가 상을 찌푸렸다.채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당신을 살인하러 쫓아다니고 당신은 나로부터 도망가는 거죠.살인 원칙은 철저한 당위성을 좇으며 당신이 나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면 당신은 내 손에 죽는거고,지난번 같이 슬기롭게 벗어난다면 난 당신의 사랑의 포로가 되는 거죠.』 민우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언제까지 난 당신 상상력의 포로가 돼야 하는 거요.지금 들쭉날쭉한 당신의 말을 듣고 있자니 더 이상 아둔한 내 머리가 쫓아갈 수가 없소.집에 돌아가시오.내 행여라도 마음이 내키면 연락하리다.』 『훌륭한 작가는 사실만을 얘기해요.사실을 따라올수 있는 상상력은 없으니까요.』 채영이 잠시 침묵을 지켰다.민우는 갑자기 기분이 야릇해지는 것이 느껴졌다.그렇다면 혹시 그녀의 모든 얘기가 사실인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내 민우는 머리를 털었다.환상이다.그녀는 지금 자기의 시나리오에 깊이 빠져있는 것이다.더이 상 환상이 가득한 이 여자와 얘기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병든 정신은 함부로 접하는 것이 아니니까….
『잘가요.』 민우는 다시 길게 의자에 몸을 눕히고 눈을 감았다.세상엔 참 별난 직업도 많다.이 정도 환상이 가득한 상태라면 정신병원에서는 중환자실 감인데 시나리오 당선 작가라니….
『정민수씨가 왜 웃으면서 죽었는지 아세요?』 『뭐라고!그걸 당신이 어떻게….』 민우는 깜짝 놀라 다시 몸을 일으켰다.정민수의 복잡한 가정생활을 아는 사람은 가까운 정신과 의사 몇몇 외에는 없었다.그는 처가의 복잡한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택한 것이었다.처가는 그에게 병원을 차려주는 대신 시시각각 그의 삶을 간섭하고 죄어 왔던 것이다.강하고 과잉간섭을 하는 엄마에게 무조건 순종적인 아내는 그에게 큰 도움이 못됐다.그래서 그가 한강에 몸을 던져 자살한 후 얼굴에 새겨진 미소를 보고 사정을 아는 친구들은 자유의 미소라고까지 해석 을 했었다.그런데 그것을 채영이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민우는이내 다시 의자에 몸을 눕혔다.이제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 믿는다.이년은 보나마나 철저하게 자료조사를 한 것이리라. 『그는 불쌍한 사람이었어요.감옥같은 집안으로부터 탈출하기를바랐죠.그러나 자식들을 생각하면 감히 행동으로 옮길만한 용기도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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