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에 담긴 인도 현대미술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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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모더니즘은 마음의 자유다, 미의식의 노예가 아니라.”

서구 모더니즘의 수용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는 이 구절은 인도 시인 타고르(1861∼1941)의 싯구다. 타고르는 아시아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1913년)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로서 오랜 역사를 가진 인도는 19세기부터 100년 가까이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으며 근대화를 겪었다. 인도 미술도 이같은 과정을 거쳤다. 입체파같은 새로운 조형 형식은 자국 전통을 재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전통과 현대가 갈등과 조화를 거친 과정이 화폭 위에 숨김없이 펼쳐진다. 서울대학교 미술관(02-880-9509)에서 4월 25일까지 열리는 ‘인도현대미술-일상에서 상상까지’전에서 볼 수 있다.

싱가포르 미술관과 공동 기획, 인도 현대미술 1세대인 아추탄 라마찬드란(73)부터 파라드 후세인(36)까지 대표 작가 9명의 회화 27점을 추렸다.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렘 쿨하스가 설계한 미술관 건물 앞에는 굴라무하마드 셰이크(71)의 붉은 그림이 현수막으로 제작돼 걸렸다. 샤갈을 닮은 이 ‘기다림과 방랑에 관하여’(1981)가 발딛고 있는 기반은 천상의 공간을 축소해 담고자 한 인도 전통 건축이다. 시점에 구애받지 않고 그려진 환상 세계 이곳 저곳서 외로이 떠도는 아가씨들은 작가 자신이다.

인도 ‘국민화가’ 라마찬드란 역시 근대적 예술가의 자의식을 화폭에 나타냈다. 총 6미터가 넘는 네 폭 유화 ‘팔라쉬 나무의 탄생’(1992·사진) 한가운데에는 작가의 자화상이 등장한다. 신의 형상을 하고 나무를 그리고 있는 자다. 인도 신화같은 다채로운 화면을 통해 라마찬드란은 ‘예술가는 장인도, 기록자도, 계몽자도 아닌 창조자’라고 웅변한다.

급격한 경제 성장과 함께 세계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는 중국 현대미술처럼, 인도미술도 이 과정을 뒤따르고 있다. 크리스티의 인도 근현대 미술품 경매 규모만 해도 2004년 437만 달러에서 2006년 1560만 달러로 급증했다. 꼭 시장의 관심 때문만은 아니다. 이번 전시는 식민지와 근대화를 겪으며 자국 현대미술이 나아갈 바를 질문해 온 아시아 다른 나라의 거울이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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