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地山謙괘-산이 땅밑으로 몸낮춘 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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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겸괘는 땅()이 위에 있고,산()이 아래에 있는 상이다.땅 위에 우뚝 솟아 있어야 할 산이 오히려 땅 밑에 몸을 낮추고 있으니 크게 겸손한 것이다.대유(大有)한 재산을 얻게 되면 교만해지므로 겸손한 마음과 행동을 취하라고 대유괘 다음에 겸괘를놓았다. 겸손하면 매사가 순조롭게 형통하므로 좋은 결과를 이룬다.하늘은 위에 있되 겸손하여 아래로 빛을 비추고,땅은 아래에서 본분을 지키며 스스로 겸손한다.사람을 비롯한 만물은 겸손을좋아하는 하늘과 땅의 덕을 본받아 태어났기 때문에 교만 한 것을 싫어하고 겸손함을 좋아한다.그래서 하늘은 보름달은 이지러지게 하고 초승달과 같이 겸손한 것은 둥글게 하며,땅은 차있는 물을 흐르게 하여 비어있는 곳을 채우게 한다.
겸괘를 배우다 육사효의『「엄지손가락으로 겸손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하고 여쭈었더니 선생님께선 주먹을 쥐고엄지손가락을 주먹 밖으로 내놓기도 하고 주먹 안에 넣기도 하시며『다른 손가락은 나머지 다른 손가락에 굽히지 못하지만 엄지손가락만은 네 손가락을 자유로이 왕래하며,위에 있기도 하고 밑에있기도 하지 않느냐』고 하셨다.이어『육사효는 군왕밑에 있는 대신이다.대신은 임금과 백성에게 모두 겸손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손가락에 두루 겸손한 엄지손가락 에 비유한 것이다』고 가르쳐주셨다. 퇴계선생의 병환이 위중하게 되어 문인들이 걱정하며 점괘를 얻자 겸괘가 나왔다.괘사에「君子有終(군자의 마침)」이라 한대로 퇴계선생께선 회복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그런데 어떤 사람이 자기 아버지 병점(病占)을 원하기에 점을 해 겸괘를 얻었다.괘사대로「사망하겠다」고 했는데 그분은 죽지 않고 병이 치유되었다.선생님께『점을 어디 믿겠습니까.퇴계선생 병환에는 겸괘 풀이대로 돌아가셨는데,얼마전의 병점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고 했더니 선생님께서「군자가 마친다고 했지 소 인이 마친다고 했느냐.목적과 대상이 다르고,점괘를 얻는 사람의 정신과 풀이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른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겸괘를 상황별로 풀이하면,초효는 겸괘의 맨 밑에 있어 겸손하고 또 겸손하면서 스스로 덕을 기르니 어떠한 큰 일도 해낼 수있다.이효는 남을 의식하지 않고 계속 겸양의 덕을 쌓으니 저절로 덕이 알려져 이름이 높아진다.삼효는 남을 위 해 노력하면서도 그 공을 남에게 돌리니 크게 유종의 미를 거둔다.사효는 고관의 위치에서 엄지손가락같이 두루 겸손하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오효는 통치자가 자기 욕심을 버리고 백성을 위해 일하는데도 교만한 자가 있으면 평화적 차원에서 징벌하라.상효는 밑에 있어야 할 음이 위에 있으면서 겸손한 체만 하며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슬퍼하는 격이니 자신의 마음을 반성해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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