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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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민우는 다시 상이 찌푸려졌다.
『그 사람은 자살한 거야.도대체 정민수는 또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제가 죽였으니까요.담배 한 대 피워도 돼요.』 채영이 담배를 꺼내면서 물었다.
『안돼! 난 담배 피우는 여자가 싫어.』 채영이 웃으면서 담배를 집어 넣었다.
『고마워요.그렇게 얘기해줘서…이제 잠은 좀 깼어요.』 그러고보니 채영은 민우의 잠을 깨우기 위해 이것저것 관심끌만한 것을들먹여 자극한 것이었다.심지어 작년 신문의 하단에 조그맣게 장식된 정민수의 이름까지도 들먹이면서….
『못당하겠군.그 상상력은….』 채영이 고개를 까닥여 사의를 표했다.민우는 재치있게 말을 이끌어 가는 그녀가 다소 귀엽게도느껴졌다.그래서 다소 풀어져 부드럽게 물었다.
『도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뭐요?』 『당신의 모든 것을 원해요.당신의 육체,영혼,사랑,지식,체험,모든 것을….』 민우는 기가 막혔다.참 뻔뻔스러운 여자다.털도 안뽑고 통째로 먹으려 하다니….』 『그럼 나에게 무엇을 해주겠소.』 『한가지만 빼놓고 나의 모든 것을 드리죠.육체,영혼,사랑,나의 글,모든 것을….』 『그 빼놓은 한가지는 뭐요?』 『노벨문학상! 그것만은 이미 주기로 약속한 사람이 있어요.아니 노벨문학상도 당신께 드릴게요.단지 내가 노벨상을 수상하는 날 그 남자를 내가 한번 포옹하는 것만은 허락해 주세요.아니 내가 그 남자를 연설문에서한번 언급하는 것만은… 아니 좌중에 앉아서 박수를 치는 그를 감격어린 눈길로 한번 보는 것만은,아니 그 남자가 참석자 중에있나 없나 한번 휘둘러 찾는 것만은 허락해 주세요.』 채영은 이마를 꼭꼭 누르며 취한 듯 말했다.민우는 기도 안막혔다.참 상태가 심해도 한참 심한 여자다.누가 노벨상을 주기라도 한댔나.민우는 이제 적당하게 말을 끝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다시 냉정하게 단언하듯 말했다.
『난 더이상 당신을 믿을 수 없소.언제 당신이 내 목에 또 칼을 들이밀지도 모르니까.이제 그만 돌아가 주시오.』 『그것도사실이에요.사실 난 당신에게 이렇게 매달리기 보다는 차라리 살인 사냥을 할까도 생각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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