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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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혼인 날짜는 길례와 연옥이 상의하여 둘이서 정한 것이다.
하니문 베이비를 갖게 되는 바람에 결혼하자마자 입덧하느라 진탕 고생한 길례다.딸에게는 오붓한 신혼생활을 누리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자면 최소한 결혼 첫달에 회임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산부인과 의사 친구가 일러준 계산법에 의해 혼인날을 잡았다.
달거리 예정일에서 역산(逆算)하여 가장 안전한 날짜를 추려내는방법이다.
난자는 예정 달거리 12일 전에서 16일 전까지의 닷새 동안에 배란(排卵)된다.이 기간에 회임되는 것이다.
그런데 난자의 생존기간은 만 하루,정자의 생존기간은 사흘이나되므로 이 나흘을 또 회임 가능 기간에 합산해야 한다.
이 회임 가능 기간을 제한 나머지가 소위 「안전기간」이다.
달거리가 한달에 한번 꼴로 돌아오는 30일형의 여성인 경우 달거리 시작 11일째 되는 날까지와 21일째 되는 날부터 다음달거리 때까지가 안전기간이라는 계산이 추려진다.
29일형이라면 시작 10일째 되는 날까지와 시작 20일 이후부터. 28일형은 시작 9일째까지와 시작 19일 이후부터가 안전기간이다.
끝자리 숫자가 같기 때문에 외우기도 쉽다.버드 컨트롤을 하자면 이렇게 배란일을 계산해내는 것이 가장 건전하고 손쉬운 방법이라고 의사 친구는 말한다.
결국 가장 바람직한 결혼식 날짜는 예정 달거리 전 1주일째 되는 날이다.
식을 올려 신혼여행 다녀오는 사이에 달거리가 비쳐 당황하는 일도 없고,첫달에 회임할 염려도 없다.
『5월27일.달반도 안 남았구나.』 남편이 무연(憮然)한 빛으로 딸을 바라본다.
『예쁜 딸,착한 딸,건강한 딸로 자라줘서 정말 고맙다.앞으로는 예쁜 며느리,착한 며느리,건강한 며느리가 돼서 사랑 많이 받고 살아라.』 젖은 목소리였다.딸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리고… 너나 네 어머니한테 큰 부담을 더해주게 됐다.미안하다.』 종손 아기 얘기인 모양이다.
연옥이 길례의 눈치를 얼른 살핀다.
『너도 알고 있었나보구나.』 쓸쓸한 길례의 말투에 고개를 젓는다. 『조금 전에 듣고 놀랐어요.하지만 어떻게 해요.우리가 키워야지….저야 시집가버리니 별로 도움돼 드릴 수 없고,어머니만 고생하시게 생겼어요.』 속상해 하는 얼굴이다.
『생후 몇개월이나 된 아기예요?』 『갓난애는 아니고,돌은 지났나보더라.』 남편과 딸이 주고받는 소리를 들으며 길례는 결단을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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