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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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전에 어떤 영화를 봤더니 환자가 침대에 누워서 얘기하는데 정신과 의사는 그 환자의 머리맡에서 졸고 있더군요.지금 민우씨태도도 환자 얘기를 듣기 위한 정신과 의사의 면담 자세라고 봐도 되겠죠.』 민우는 깜박 고개를 털고 다시 눈을 떴다.채영이여전히 미소를 지으면서 민우를 바라보고 있었다.징그러운 여자.
『채영씨는 날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사실이오.』 『사실이에요.
』 채영이 방긋 웃으며 바싹 다가앉았다.
『채영씨가 정말 날 사랑한다면 돌아가 주시오.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 아니오.』 채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정 그러시다면 돌아가겠어요.사랑하는 분! 그러나 한가지….
』 채영은 손가방을 열어 지갑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민우의 책상에 올려놓았다.
『여기 제 작가사무실 전화번호가 있어요.전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테니 연락주세요.그리고 이건 그냥 말씀드리는 건데 만일 민우씨가 전화를 안주신다면 정신과 의사 연쇄살인 사건은 다시 시작될 거예요.』 민우는 갑자기 정신이 퍼뜩 났다.
『뭐라고!』 채영이 씩 웃으며 말했다.
『제가 그 범인이에요.「광염 소나타」아시죠.그 주인공과 저는비슷한 작품 세계에 살고 있어요.』 『미친 년!』 『미친 년이라고 하셔도 할 수 없어요.저는 이미 글에 제 목숨을 걸었어요.』 『그래서 미친 년이라고 하는 게 아니야.너는 아직도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어.내적 환상과 바깥의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정신병이야.』 채영이 어깨를 으쓱하며다시 자리에 앉았다.
『역시 정신과 의사는 다르시군요.당신을 만난건 제 행운이에요.아니 운명이라고 할 수 있죠.』 『돌아가요.아직 난 당신을 치료할 준비가 안됐소.내 마음이 내키면 연락하리다.』 민우는 채영이 다시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채영에게 말려들었다는 것을느낄 수 있었다.교활한 여자.누가 다시 자기하고 얘기한댔나.
『작년 봄에 의문사한 정민수라는 정신과 의사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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