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톱>"젊은 남자"-X세대 증후군 영상해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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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신분의 수직 상승.
암담한 현실에서 탈출하고픈 젊은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빠지게 마련인 이런 유혹을 적나라하게 그린 영화가 배창호 감독의 『젊은 남자』다.
출세와 욕망의 급행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젊은이를 그린 이 영화에서,3년만에 메가폰을 잡은 배감독은 X세대를 해부하기 위해압구정동과 홍대앞,대학로를 섭렵한뒤 『뭔가 조급히 이뤄내려는 청춘의 속성은 과거와 차이가 없다.다만 표현방식 이 다를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고래 사냥』과 『깊고 푸른밤』의 90년대판을 만들었다.『고래사냥』에서 병태의 소망인 통기타를 고성능 벤츠로,『깊고 푸른밤』에서의 아메리칸 드림을 CF스타로 바꾸고 좀더 감각적 영상으로 꾸며냈다.
영화는 교통사고 현장을 스쳐가는 것으로 시작해 먼길을 돌아 다시 그 장면에 이른다.관객들은 그동안 『주인공은 왜 죽어야했는가』라는 감독의 화두(話頭)를 내내 생각하게 된다.
이한(이정재 扮)은 사람들의 부러움속에 외제차를 타고 전망좋은 오피스텔에서 살기를 꿈꾸는 3류 모델.
그 주위에는 세명의 여자가 있다.반항적이면서도 순수함이 있는재이(신은경 扮),출세의 대가로 육체를 요구하는 손실장(김보연扮),잃어버린 젊은 날의 보상심리를 가진 차승혜(이응경 扮).
재이와 풋풋한 사랑을 나누면서도 손실장의 끈끈한 욕구와 자신의 꿈 사이에서 고민하던 이한은 우연히 마주친 연상의 승혜에게서 「엘리베이터」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녀의 도움으로 새로운 미래에 다가서는 이한.말쑥한 양복에 고급 시가를 물고 혼자 축배를 드는 이한의 득의양양한 모습을 3백60도 회전하며 잡은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배경음악인 에디트 피아프의 『광대에 대한 축배』도 초조 와 기대속에섞인 한줄기 허무까지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운명처럼 찾아드는 우발적 살인.
심한 갈등속에 악몽같은 현실을 그냥 「덮어」두기로 결론을 내고 새로운 무대로 향하지만 「죽 뻗은 고속도로」를 마음껏 달리기 시작한 것도 잠시,「거대한 트럭」에 의해 이한이 탄 「노란색 벤츠」는 뒤집히고 만다.로이 오비슨의 『In Dreams』가 주제가처럼 흐르고.
배감독은 이 영화에서 기성세대들이 흔히 젊은이들을 『꿈은 있지만 그것을 실현시키려는 노력은 없다』고 여기는 시각을 정면에서 부정한다.
그는 「그 노력이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현실과의 타협이어서는 안되지 않을까.꿈을 이루기위한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계속하지만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단지 관객에게 한 젊은이의 삶과 죽음을 내던져 놓고 있 을 뿐이다.
배감독은 이한의 죽음을 운명으로 풀어내고 있다.
사인은 단순 교통사고며 사고의 원인이 된 테이프를 통해 보여준 암시는 그의 인생이 이미 운명적으로 뒤틀린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듯하다.
〈鄭亨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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