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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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다음 날 민우는 늦게까지 잤다.귀를 때리는 전화벨소리에 견디다 못해 일어난 것이다.서둘러 씻고 병원에 가니 환자들이 인상을 쓰고 기다리고 있었다.그안에는 채영도 섞여 있었다.민우는 눈에 불이 났으나 모른 체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간호사를 불러 채영을 절대 방으로 들이지 말라고 얘기했다.그런 년은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상담 안한다.그리고 어제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환자들하고는 절대 개인적인 관계를안갖는다.역시 프로이트가 옳았다.근친상간은 골치아 픈 것이다.
민우는 환자들을 보면서 자꾸 감기는 눈을 억지로 부릅떴으나 간밤의 피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집중을 해야 상담을 할 수 있는데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이런 때는 빨리 빨리 약만 지어 주고 내보내는 것이다.민우가 그럭저 럭 환자들을 다 볼 즈음 채영이 들어왔다.민우는 발칵 화가 났으나 어쩔 수 없었다.
요즘 간호사들이 어디 의사 말을 듣나.뭐라고 하면 그만두겠다고토라지기나 하지….
『제가 사랑싸움이라고 얘기하면서 케이크를 하나 사다 주었더니웃으면서 들어가라고 하더군요.』 채영이 명랑하게 건너편에 앉는다.채영이 얼굴에 짙게 화장을 한 것은 간밤에 맞은 상처를 감추기 위한 것 같았다.
『나 지금 굉장히 피곤하니까 우리 나중에 얘기합시다.』 『주무세요.전 선생님이 푹 쉬시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에요.』 민우는 자기도 모르게 채영의 웃는 얼굴에 호감이 갔다.저 화사한 얼굴에 그토록 빠졌던 거지.걸핏하면 칭찬하고 나를존중하고 이해하는 저 모습에….
『채영씨 앞에서 자다가 언제 목이 잘릴 지 모르는 일이오.나가 주시오.』 민우는 책상에 발을 올려놓으며 길게 의자에 몸을눕혔다.이미 통고한 이상 그녀가 나가든 안나가든 사람 취급을 안할 참이었다.
『당신을 사랑해요!』 『성전환 수술은 언제 했소?』 채영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수태될 때요.난자 속으로 수컷 정자가 들어오려고 하길래 힘껏 밀어내고 암컷 정자를 받았죠.나중에 내님을 받는 데 지장이있으니 딴데 가서 알아보라고요.저는 법적으로 확실한 처녀예요.
』 「그저 입은 살아서…」.
민우는 속으로 시큰둥해서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말 잘하는 작가와 말을 주고받아 봤자 나만 손해다.눈을 감자마자 다시 피로가 엄습했다.이젠 나이가 든 모양이다.레지던트 때는 밤새 술을퍼마셔도 다음날엔 끄떡없이 환자를 볼 수 있었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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