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미터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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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길이를 재는 단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체(人體)를 기준삼아생겨났다.동양 척관법(尺貫法)의 기본이 되는 척(尺)이란 글자는 손을 펼쳐 물건을 재는 모양을 본 뜬 상형문자다.1척 또는1자는 어른의 한 뼘 길이를 의미했다.서양의 야드파운드법에서도1야드는 허리 둘레,1피트는 발길이를 뜻했다.
이런 단위의 실제 길이란 시대나 장소,용도에 따라 제각각이었다.중국에서 1척이란 것도 초기엔 18㎝ 전후였지만 한대(漢代)에는 23㎝정도,당대(唐代)에는 24.5㎝정도로 후대로 오면서 조금씩 길어진다.그러니까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8척장신의 장수라면 요즘 키로는 1백80㎝ 남짓으로 생각하면 된다.같은 시대에도 용도에 따라 달라졌다.조선시대 시장에서 길이를잴 때는 주로 주척(周尺)을 썼는데 주척 1자는 보통 여섯치 여섯푼,요즘 칫수로 대략 20㎝ 정 도였다.그러나 관가에서 건축할 때 쓰던 영조척(營造尺)1자는 약 30㎝,집에서 옷감을 잴 때 흔히 쓰던 침척(針尺)은 약 33㎝에 해당한다.또 상인들은 보통 침척보다 다섯푼(약 1.5㎝)짧은 포척(布尺)으로 재어 팔아 부당이득을 취 하기도 했다.
이렇듯 들쭉날쭉했던 길이재기에 혁명적인 전환을 이룬 미터법이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한지 지난 7일로 꼭 2백주년을 맞았다.당시 1m의 정의는 지구 자오선(子午線)길이의 4천만분의1.이를토대로 1875년 국제적인 미터조약이 체결됐고 1889년 제1회 국제도량형총회에서 미터 원기(原器)를 토대로 한 미터법이 확립됐다.그러나 백금과 이리듐의 합금으로 만든 미터원기는 파손위험과 정밀도에 문제가 제기돼 1960년엔 이를 폐기하고 크립톤 86원자가 방사하는 오렌지색 스 펙트럼선 파장의 1백65만7백63.73배를 1m로 정했다.
정밀계측의 필요성이 더욱 증대되면서 미터의 정의는 다시 한번바뀌게 된다.1983년 제17차 국제도량형총회가 새로 정의한 1m는「빛이 진공중에서 2억9천9백79만2천4백58분의1초동안진행된 거리」다.그러니까 이제 길이는「빛」과「시 간」에 의해 규정되는 새로운 개념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다.이런 방식에서 생길수 있는 오차는 10조분의1m.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미터의 역사에도 이렇듯 끝없는 과학적 정밀성을 추구하려는 인류의 노력이 배어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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