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바루기] ‘옛스러운’ 정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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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예전의 정취를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사회에 불만을 품은 방화로 인해 하루아침에 한국의 대표적 상징물에서 폐허로 변해 버린 숭례문.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참담하다. 실측 도면이 남아 있어 옛 모습대로 복원된다 하더라도 그 속에 담긴 유구한 역사와 멋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옛것과 같은 맛이나 멋이 있다고 할 때 ‘옛스럽다’고 표현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의 울진 망양정은 본래 자리에 있지도 않은 데다 건물도 요즘 지어진 것이어서 옛스러운 멋이 없다” “부수고 새로 지은 게 아니라 낡은 한옥을 개조한 서울 삼청동 가게들은 옛스러우면서도 현대적 미감을 자아낸다”와 같이 쓰고 있지만 ‘예스러운’ ‘예스러우면서도’라고 해야 맞다.

‘-스럽다’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러한 성질이 있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관형사 ‘옛’과는 결합할 수 없다. 명사 ‘예’와 결합한 형태인 ‘예스럽다’가 올바른 표현이다. “건물의 외관이 무척 예스럽다”처럼 사용해야 한다.

‘아주 오래전부터’라는 의미로 자주 쓰는 ‘예부터’도 마찬가지다. “태백 준령의 금강소나무는 단단하고 잘 썩지 않아 옛부터 궁궐을 짓는 데 이용돼 왔다”와 같이 표현해서는 안 된다. ‘예부터’라고 고쳐야 한다.

관형사 ‘옛’은 ‘옛 자취’ ‘옛 기억’처럼 체언 앞에서 그 체언의 내용을 자세히 꾸며 주는 역할을 한다. ‘-스럽다’ ‘-부터’ 같은 접미사나 조사를 붙여 ‘옛스럽다’ ‘옛부터’의 꼴로 사용할 수 없다.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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