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 연극배우 돌풍-김갑수.정경순(태백산맥)씨등 각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중견 연극배우들이 배우기근에 시달리는 영화계에서 크게 기세를 올리고 있다.
연극배우들은 용모나 「반짝 인기」가 아닌 연기력과 프로정신만으로도 관객을 끌어모을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최근 들어 영화계를사실상 주도해 신선한 충격을 주고있다.
데뷔작 『태백산맥』으로 대종상 남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을 탄 연극배우 김갑수와 정경순은 연기력으로 영화의 흐름과 인물비중을자연스럽게 바꿔놓기까지 했다.
두사람은 처음엔 조연과 단역으로 각각 캐스팅됐으나 편집과정에서 사실상 주연이 돼버렸다.
임권택감독은 『우익청년 염상구역의 김갑수가 인물성격을 예상보다 훨씬 잘 묘사하고 각 장면을 힘있게 이끄는 바람에 결국 그를 앞에 내세우는 것이 완성도를 높이는 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좌익인사 부인인 죽산댁역의 정경순에 대해서도 『워낙 감각이 뛰어나 연극과 영화연기의 차이를 조금 주지시켜 줬더니 스스로 두드러진 인물을 창조해내 편집과정에서 그녀를 부각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연극배우 출신들의 뛰어난 연기력이 배우 잘 쓰기로 유명한 임감독으로 하여금 영화의 흐름과 배역의 비중을 바꿔놓게 만든 셈이다. 연극배우들의 영화계 대거진출은 안성기.심혜진등 일부 인기영화배우만 중복등장하는 경향이 있는 영화계에 참신성을 안겨주는 것은 물론 좋은 연기로 영화의 작품성을 높이는 주요 요인이되고 있다.
대종상 작품상.감독상등 8개부문을 휩쓴 『영원한 제국』은 박종원감독의 뛰어난 연출력 외에도 남우조연상을 받은 최종원과 주인공 이인몽역의 조재현등 연극배우 출신의 좋은 연기가 작품성 향상에 크게 기여한 사례로 꼽힌다.최종원은 노론의 영수 심환지역을 맡아 꼬장꼬장한 늙은 벼슬아치의 풍모를 노련하게 그려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지난해 최대 화제작이었던 『너에게로 나를 보낸다』에서도 안진형.최재명등 연극배우들이 조연.단역으로 출연,몸을 사리지 않는과감한 연기로 감독의 연출의도를 살리는데 도움을 줬다.
연극배우 출신 문성근씨등이 아예 전업 영화배우로 나선 것과는달리 최근의 연극배우들은 연극.영화를 병행하고 있어 주목된다.
김갑수는 『태백산맥』촬영직후 연극 『천재시인 이상』에 출연했고 최근 영화 『금홍아,금홍아』의 주연을 맡아 연극과 영화를 오가고 있다.
『영원한 제국』외에 『마누라 죽이기』의 한심한 킬러,『남자는괴로워』의 얌체대리등을 맡았고 연극무대에도 꾸준히 서고있는 최종원씨는 자신을 『연극을 본고장으로 하고 영화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통합배우』라고 풀이한다.여기에 발맞춰 많은 영화사들이 기획단계에서부터 연극인에게 배역선정 자문을 구하고 있으며 우수 연극배우의 경우 모셔오기 경쟁까지 벌이고있다.
김갑수.최종원.정경순등은 대종상 수상전에도 여러 영화사로부터다양한 배역에 출연교섭을 받은바 있다.
蔡仁澤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