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그녀와 민우는 어색한 대화를 잠시 주고받다 곧 면담을 끝냈다.육체를 거부한 이상 괜히 시간끌 필요는 없는 것이다.민우를 찾아와 유혹하는 여자들은 대부분 자기 시간이 많은 미시족들이었다.민우는 처음에는 그들을 피하거나 점잖게 타일러 보냈으나 점점 반복되는 유혹에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아니 솔직히 말하면 마음이 흔들렸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열 계집 싫어하는 남자가 어디 있는가.
그래서 이제는 민우 쪽에서도 본격적으로 유혹하기 시작했다.그래서 걸리면 같이 자는 거고 아니면 아까 환자같이 허탈하게 돌려보내는 것이다.대부분의 여자들은 차마 선을 넘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나곤 했다.가정의 파국까지 몰고 올 수도 있는 모험을 감행할 만한 여자는 드물었던 것이다.그러나 개중에 맹한 여자들은 민 우의 품에 안겼다.그래서 민우는 요즘 살맛이 났다.적어도 섹스 하나만은 지치지 않고 할 수 있었다.민우에게 몸을 맡기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민우의 사랑의 맹세를 그대로 믿고 있었다.그러나 민우는 입에서만 사랑이 따라다닐 뿐 마음에는 사랑이없었다.사랑이라면 한 곳에 머무르는 삶을 의미하는데 아내와 자식,주미리까지 죽은 마당에 민우가 그런 안정된 삶에 애착을 가질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민우가 원하는 삶은 그저 되는 대로 흘러가는 삶이었다.그것이 고통이 되든 섹스 ,도전,모험,파멸,살아있는 죽음이 되든 흘러갈 때까지 흘러가 볼 참이었다.그러나정신병만은 적당히 발작하지 않을 정도로 조절하기로 했다.정신병은 처음에는 환상적이어서 좋으나 곧 죽으려야 죽을 수도 없고 살려야 살 수도 없는 지독한 고통을 안겨주니까….또 정신병까지누리게 되면 나머지 죽음을 누리는데 지장이 있다.
그래서 민우를 사랑하는 여자들은 한결같이 사랑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민우는 애당초 사랑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러나그 고통은 민우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먼저 꼬리를 친 것은 그들이니까….민우가 여자들을 유혹하는 데는 정신의학 지식이 큰 도움이 됐다.정신과에서 닦은 상담 테크닉은 그대로 남녀관계에도 적용이 되었던 것이다.환자들의 정신과 의사를 향한긍정적인 전이를 이용해 자기 이득을 취하는 것은 정신치료자로서는 금기 사항이었으나 이미 안정된 삶을 떠나 죽음과 손잡기로 한 민우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민우와의 비정상적인 사랑에 빠져드는 여자들은 대개 부성 콤플렉스(father complex)가 강한 여자들이었다.성장하면서 잘못 받은 아버지의 영향 때문에 그네들은 안정된 한 남자와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제는불가능한 맹목적인 아버지의 사랑을 찾아 끝없이 헤매는 보헤미안이었다.그러한 맹목적인 사랑을 민우는 줄 수 있었다.민우 또한사랑에는 맹목적이었기 때문이다.물론 그 사랑은 다른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이긴 하지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