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전시장을 전시하는’ 파리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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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프랑스에는 외국 손님이 많이 찾아온다. 지난해는 8200만 명으로 프랑스 인구보다 2000만 명이나 더 많았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만나는 한국 손님의 상당수는 관광보다 일 때문에 온 사람들이다. 파리에선 연중 전시회가 열리기 때문이다.<본지 2월 5일자 14면>

지난달 파리에서 열린 몇몇 전시회를 다녀온 뒤 엄청난 인파에 놀랐지만,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전시회 자체가 엄청난 산업이란 사실이었다. 프랑스를 찾는 외국 손님이 연중 끊이지 않는 비결도 알 수 있었다.

패션·모터·와인 등 대규모 전시회에 오는 인원만 한 해 350만 명이다. 전시회 대부분은 관광 성수기인 여름철을 피해 열리기 때문에 파리 숙박업소들은 연중 호황이다. 1∼2월 파리의 주요 호텔은 대부분 예약이 끝난 상태다. 한 호텔 직원은 “파리는 연중 열리는 전시회로 성수기·비수기가 따로 없다”고 말했다. 파리는 출장 온 손님들을 위해 대형 전시회장에 관광상품 등을 배치해 짭짤한 수익을 올린다. 이들이 관광객보다 돈을 더 많이 쓰기 때문이다. 덕분에 파리 인근에만 5만2000개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밀라노,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은 프랑스보다 늦었지만 대형 전시장 건설 등에 집중 투자해 ‘신흥 전시장 도시’로 떠올랐다. 유럽의 주요 도시들이 연간 3만 회에 3억5000만 명을 몰고 다니며 수십조원이 움직이는 전시회의 경제 효과를 알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뿐만 아니라 관광에서도 중국·일본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인 우리나라가 올해 관광객 1000만 명 유치를 목표로 세웠다. 그러나 관광 자원·인프라가 빈약한 상황에서 거창한 목표만 세운다고 갑자기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찾을까 싶다. 관광산업을 살리려면 우리도 볼거리를 창조해 제공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유럽 각국이 소리 없는 전쟁 중인 ‘전시회 산업’으로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 중국과 일본에 끼인 지리적 위치를 잘 활용하면 산업은 물론 관광산업에도 큰 힘이 될 수 있다. 물론 전시장만 짓는다고 될 일은 아니다. 여러 분야에서 전시회 개최 역량과 손님 유치 능력을 갖춰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업계가 손잡고 치밀하게 추진해볼 만한 분야다.

전진배 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