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빠진 친일 사이트 10여개 버젓이 활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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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조선총독부 자료에 의하면 3.1운동의 참가자는 106만명. 이들이 평화적으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을 리 없다. 1992년 미국 LA 흑인폭동처럼 물건을 약탈하거나 상점을 부쉈을 게 뻔하다. 조선 최대의 폭동이 사망자 553명으로 막을 내린 것은 일본이 평화적으로 진압했기 때문이다."

29일 D포털 사이트의 한 동호인 카페인 '더러운 코리안'에 올라온 글 중 일부분이다.

또 다른 카페 '황국신민에 대한 진실'에선 안중근 의사를 "개인적인 불만을 이토 히로부미의 탓으로 돌려 분풀이한 수구반동"이라고 주장했다.

국내 일부 네티즌이 만든 친일(親日) 사이트들이 지나친 역사왜곡과 민족비하를 일삼고 있어 분노를 사고 있다.

친일 사이트들은 주요 포털 사이트의 카페를 중심으로 '선구자-친일파를 위한 모임' '친일파를 위한 변명' '더러운 코리안' 등 10여개가 있으며, 카페마다 1000~5000명 정도의 회원을 두고 있다. 회원들은 거의 대부분 국내 네티즌들이다.

이들은 '한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비판하기 위한 것'이란 명분을 내걸고 있으나 실제론 일제의 침략 논리에 동조하고 한국민들을 깎아내리는 내용을 무분별하게 전파하고 있다.

이들 카페의 운영자는 대개 20.30대 네티즌으로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친일 사이트를 운영하는 한 네티즌은 본사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자신을 '20대 후반 해외 유학생'으로만 소개했다.

그는 사이트 운영 동기에 대해 "우리는 정신병자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잘못된 점을 얘기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교묘한 논리로 궤변을 포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선구자-친일파 모임'은 "많은 대학에서 일문과가 없는 이유는 해방 이후 대다수 한국인이 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등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간직했기 때문"이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친일 사이트는 역사왜곡에만 그치지 않고 지하철에서 취객이나 노숙자들이 벌이는 추태를 우리 민족성에 원인이 있다고 싸잡아 매도하고 있다.

네티즌의 비난이 거세지자 '황국신민…'은 최근 자진 폐쇄했다가 비공개로 다시 개설한 뒤 회원끼리만 비밀리에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친일카페를 근절할 뾰족한 법적 제재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D포털 사이트 관계자는 "친일 사이트를 폐쇄하라는 요청이 있어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자문했지만 '결정하기 어렵다'는 말만 들었다"면서 "음란성.인권침해 요소가 발견되지 않는 한 폐쇄하지 못하는 것이 고민"이라고 밝혔다.

이철재 기자, 이동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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