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79. 커닝 페이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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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2006년 연세대에서 1학기 수업을 종강한 날.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과 사진을 찍었다.

 나는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나에게 배운 지식을 어딘가에서 써먹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제법 특이한 시험 방식을 쓰고 있다. 우선 학생들에게 A4용지를 4분의1 크기로 잘라서 이른바 ‘커닝 페이퍼’를 만들어오라고 한다. 여기에 꼭 외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잡다한 내용을 적어오게 하는 것이다. 학생은 시험을 보면서 이 페이퍼를 자유롭게 볼 수 있다.

나는 학생시절에 느꼈던 감정 때문에 이 방법을 도입했다. 골치 아픈 암기를 하면서 ‘이런 것은 책만 펴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인데 왜 외우라고 하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 요즘 학생들은 시험을 중시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만 부정행위를 하고 나만 정직하게 봐서 손해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에 상당히 불안해하는 것 같다. 공식적인 커닝 페이퍼 방식은 불필요한 암기를 줄여주고 시험 볼 때의 불안함도 없애는 효과가 있다. 커닝 페이퍼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쓰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머리에 내용이 들어간다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1974년부터 2001년까지 이화여대에 재직할 때는 미처 쓰지 못했던 방식이다. 이화여대 퇴직을 얼마 앞두고 홍익대의 심상필 총장과 점심을 함께 한 일이 있다. 그는 나의 고등학교 동창이다. 그는 불쑥 ‘국악의 이해’라는 교양 과목으로 학생들에게 한국 음악을 좀 가르쳐달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홍익대에서 교양 수업을 네 학기 동안 했고, 2002년 가을 학기부터는 연세대 학부대학 특별초빙교수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홍익대에서 강의를 시작했을 때 나는 조금 특이한 사례로 주목을 받았다. 강사는 젊은 사람이 대부분인데, 나는 퇴직한 사람이 다시 강사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는 젊은 강사들이 “강의 비법을 좀 알려 달라”면서 쫓아오는 일까지 생겼다. 홍익대는 매 학기 강사 평가를 해서 5% 안에 들면 최우수 강사로 뽑아 상당한 혜택을 줬다. 여기에 뽑히는 것은 젊은 강사들에겐 상당히 중요한 경력이 된다. 나는 노인네 강사이기 때문에 아무런 욕심이 없었는데 결과가 좋았다.

나는 학생들이 나와 함께 공부하는 시간이 그저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찾는 데에만 매진한다. 20대는 그들 인생의 절정이기 때문에 그 순간을 즐겨야 한다. 시험에도 커닝 페이퍼를 가져오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면 인생은 비극이 되기 때문이다.

황병기<가야금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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