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노동黨 차기집권 발판 마련-국제화 노선 대폭완화 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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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온건 대중정당으로의 변신을 모색해온 영국 노동당이 차기집권으로 가는 길목에 가로놓인 마지막 장애물을 제거했다.
노동당 전국집행위원회는 13일「공동소유제」조항으로 일컬어지는당헌(黨憲)제4조를 삭제.수정키로 결정함으로써 계급정당으로부터의 탈피를 선언했다.
『당은 공동소유제를 바탕으로 노동의 모든 결실이 노동자들에게돌아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제4조는 1918년 당헌제정이래 노동당의 사회주의 정책이념의 상징으로 변함없이 유지돼왔다.공동소유 조항은 사회주의 계급정당으로서 노동당의 이념적 근거가 돼온 것이다.
전국집행위는 이 조항을 삭제하고 대신『공동선(共同善)의 구현을 위해 불가결한 기업에 대해서는 공공소유를 인정한다』로 수정했다.공동소유제를 포기하고 기업 국유화노선에서도 유연한 입장으로 물러선 셈이다.다음달 29일 특별 전당대회에서 당헌 개정안이 확정되면 창당 90년만에 영국 노동당은 사회주의 계급정당에서 현대적 중도좌파 정당으로 완전 탈바꿈하게 된다.
노조연맹체적 성격을 지닌 노동당은 전통적으로 노조를 세력기반으로 해왔다.그러나 脫산업사회로의 사회적 변화와 함께 노조세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지난 79년 1천2백만명이었던 노조원수가 지난해 7백만명으로 대폭 줄었다.이에따라 한 때 50%를웃돌던 노조가입률도 30%대로 뚝 떨어졌다.대신 중산층이 전체인구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두터운 세력층을 형성하면서노동자 계급에 바탕을 둔 계급정당으로서의 노동당은 존립기반을 위협받을 수 밖에 없게 됐다.지난 79년이래 노동당이 연속 4기나 집권에 실패한 것은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이에따라 그동안 노동당은 과격한 이미지를 털어내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노조의 비중을 축소하는등 중산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변신을 모색해 왔다.지난해 7월 옥스퍼드大 출신의 전형적중산층 엘리트인 토니 블레어(42)를 당수로 추 대한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하지만 당헌에 규정돼 있는 공동소유제를 포기하지 않는한 노동당 집권에 대한 중산층의 불안을 완전히 불식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사회주의 계급정당으로서의 마지막 근거까지 잘라버린 것이다. 블레어 개인의 인기에 힘입어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수당을 30%의 큰 차로 따돌리고 있는 노동당은 이번 당헌 개정으로 차기 집권의 확실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지적이다.
〈裵明福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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