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계 “이 와중에 제 몫 챙기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과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는 게 중요하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4·9 총선 접근법이다. 그래야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다고 본다.

지난달 23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회동해 ‘공정 공천’을 약속하고 이방호 사무총장에게 “박 전 대표 측이 공천과 관련해 요구하는 내용 중 수용할 수 있는 건 적극적으로 수용하라”고 지시한 것도 그래서였다. 지난달 29일 공천심사위가 ‘부정부패로 형이 확정된 경우 공천 신청을 불허한다’(공직후보 추천 규정 제3조 2항)는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공천 갈등이 재연되자 이 당선인은 동일한 입장을 취했다.

이 당선인의 한 핵심 측근은 31일 이 당선인의 의중과 관련, “이제 와 규정을 바꾸기엔 명분이 약하니 규정은 그대로 두되, 공천 신청 접수까지 막아서야 되겠느냐”며 “공천심사위가 ‘공천 심사’란 정치적 행위를 하기 위한 곳 아니냐. 당에서 논의해 정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부정부패 관련자 배제’란 원칙엔 손대지 않는 범위에서 ▶유연하게 ▶당이 알아서 판단하라는 기준이었다. ‘수용할 수 있는 건 적극 수용하라’는 발언과 같은 맥락이었다. 이 같은 뜻은 낮 12시 최고위원회의와 오후 3시 공심위에도 전달됐다. 낮 최고위원회의에서 친이(親李) 성향의 안상수 원내대표는 “서류 접수조차 거부하는 건 문제점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자 친박 성향의 김학원 최고위원이 “제3조 2항으로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건 위헌성이 있고, 소급 적용하는 것도 문제”라고 동조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회의가 끝난 뒤 “탄력적이고 유연한 해석을 공심위가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공심위도 이전 결정을 번복했다. 친이 성향의 김애실 위원이 “깨끗하고 유능한 사람을 공천하는 게 원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대세를 바꾸진 못했다.

이 당선인 측은 이번 조치로 공천 갈등이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성급한 기대였다.

불과 7시간여 뒤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했던 강재섭 대표가 심야에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 “최고위원회의의 결정 내용이 공심위에서 변질됐다”는 취지의 주장과 함께 이방호 사무총장을 지목했다. 그러곤 이 당선인에게 자신이든 이 사무총장이든 선택하라는 배수진을 쳤다. ‘당규 해석 논쟁’을 ‘인적 쇄신’ 투쟁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친이 진영은 “이-박 갈등 와중에 강 대표까지 제 몫 챙기기에 나섰다”고 분노하고 황당해했다.

고정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