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日 극비 수교접촉-동경 "미국에 北진출 뺏길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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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과 일본이 최근 싱가포르에서 수교교섭 재개를 위한 비공식접촉을 가진 것은 주목할만한 조짐의 하나다.
양측은 그동안 베이징(北京)을 주무대로 하고 뉴욕.제네바를 간간이 이용,접촉해왔는데 핵문제로 北-美 간에 곡절이 첨예화되자 사실상 창구를 닫다시피 해왔다.그러다가 갑자기 싱가포르에 북한의 서방창구인 김용순(金容淳)대남비서의 측근이 나타나 일본정부관계자와 만난 것은 뭔가「새로 시작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긴다.이렇게보면 이번 접촉이 지난 92년11월의 제8차회담이래 중단됐던 수교교섭을 위한 예비접촉의 성격이 있는것 같기도 하지만 제3의 장소에 새 창구를 개설한 것은 주목할만하다.
물론 양측은 지난달 효고(兵庫)현 남부지진을 계기로 총리간의첫 전문교환을 하는등 항상 접촉을 재개할수 있는 분위기를 확인해왔다. 양측관계의 이같은 진전은 北-美 관계의 확실한 진전에대한 후속조치의 성격이 있으며,수교 배상금으로 경제난을 타개하려는 북한측의 필요성이 전례없이 현실감을 주고 있다.
물론 일본은 北-美연락대표부 교환,미국의 대북(對北)무역장벽완화등에 따른 미국의 대북 정치.경제적 선점(先占)등을 의식하지 않을수 없는 입장이다.여기에는 북한의 두만강 개발지역에 투자진출을 모색해온 미쓰이(三井)상사등 유력기업들 의 조기 수교요청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미쓰이 상사등 20여개사로 구성된동아시아무역연구회가 5월께 대규모 투자조사단을 파견키로 한 것은 정부.정치권의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은 경수로지원금중 10억달러를 부담키로 약속함으로써 현실적으로 北-日간의 대화채널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때문에 일본은 북측이 요구하는 배상금과 경수로지원액및 對日외채(약 6백억엔)를 뭉뚱거려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배상금을 통한 경제난 타개는 김일성(金日成)과 같은 카리스마를 갖지못한 김정일(金正日)체제의 정치적 안정과 맞물려있다.
강석주(姜錫柱)외교부제1부부장은 지난해말『北-日교섭의 기본은과거사 배상을 日本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라고 밝혔었다.이는 北-日수교가 결국「돈」문제라는 점을 내비친 것이며 북한이 지난해 8월 일본에 쌀 지원을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양국의 이같은 입장을 볼때 향후 수교교섭은 배상금문제가 가장큰 쟁점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그동안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핵문제는 KEDO-북한간의 경수로공급 계약체결로 일단락될 가능성이 높으며,수교교섭의 직접적 결렬요인이었던 K AL기폭파범 김현희(金賢姬)의 일본어선생 李은혜납치문제에 대해 일본측은 별도의 교섭창구에서 논의할 계획인 것이다.
[東京=吳榮煥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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