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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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민우는 눈을 조금 들어 강물을 바라보았다.저 아래 보이는 아파트 잔디밭과 강물 사이에는 꽤 거리가 있었지만 눈앞으로는 가깝게 느껴져 몸을 던지면 쉽게 강물로 뛰어 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민우는 한번 몸을 던져볼까 하다가 이내 亥 개를 털었다.부질없는 생각이다.죽음은 때가 되면 싫어도 맞게 된다.살아있으면서 죽음을 곁에 붙들어 두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죽음은 어떤 식으로든 먼저 맞는 사람만 억울하게 돼있다.죽음은 삶의 수백배,수천배 아니 영겁 이상으로 나를 지배할 텐데.생명이 있는 동안에는 마음껏 삶을 누리다 가는 것이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또한 인간에게 죽음의 체험이란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 걸까.
민우는 죽은 듯이 다가와 자기를 지배하는 죽음의 위세에 질릴대로 질려버렸다.그러나 죽음에 사로잡혀 이 짧은 삶을 포기하고싶지는 않다.그 삶 의 본능이 아마 아내와 자식이 죽은 순간에도 피투성이 손목을 부여잡고 응급실로 뛰어들게 만들었을 것이다.어떤 때는 삶이 너무 무거워 삶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그러기에는 인생은 너무나 짧다.결국 죽음의 품안에 들어가암흑 속에서 영원히 죽음에 순종할 것을 서두를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삶을 어떤 이유에서라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결국 삶이란 것도 죽음에서 탄생한 것이 아닌가.
영겁의 시간을 두고 무생물에서 생물이 탄생했듯이,또 영겁의 시간을 두고 생 물체에서 인간으로 발달했듯이 인간의 삶이란 결국 죽음에서 비롯된 것이다.무한대의 죽음에 비하면 삶이란 바다위에서 찰랑거리는 한개의 물살만도 못한 것이다.그런데도 죽음은삶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끊임없이 간섭하고 조종하며 어떻 게 해서든 자기 품안으로 빨아들이려고 한다.자기가 낳은 자식을 빨리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부모와 같은 것이다.왜 그럴까. 죽음 같이 좋은 게 없기 때문에 어머니는 삶에 죽음을 강요하는 걸까.
스핑크스가 말한 대로 인간이란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거고 그 다음이 빨리 죽는 것일까.
결국 삶이란,죽음이란 고향을 멋모르고 떠나온 탕아의 방황에 불과한 걸까.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해 힘겨운 삶을 짊어지고 사는 인간이 평생돌아가기를 희구하며 산다는 에덴동산이란 결국 죽음의 동산이란 말인가.메시아가 내려와 새 하늘 새 땅을 연다는 심판의 날이란결국 죽음을 흔쾌히 맞는 죽음의 축제날이란 말인가.
『부다다다다.』 귀를 때리는 오토바이의 굉음이 민우의 깊어져가는 상념을 깨뜨렸다.민우는 고개를 털었다.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내 의지대로 조절할 수가 없다.여기서 더 진행하다가는죽음의 의도에 말려들어 광기에 휩싸이고 말 것이다.살아있는 죽음 ! 정신병을 맞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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