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즐거운천자문] 나훈아 회견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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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나훈아씨의 기자회견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뉴스로까지 보도됐다. 정상의 가수가 몇 백 명이 보는 앞에서 바지춤까지 내리려 했으니 화제가 안 된다면 오히려 이상할 일이다.

한 시간 내내 격정적인 말로 자신의 억울함을 내비쳤지만 화가 덜 풀린 표정으로 그가 떠난 후 남겨진 건 의혹이 풀렸다는 수긍보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라는 반응이 대세였다.

네티즌의 대응도 반반이었다. 두 항목으로 나누면 ‘오죽하면’과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요약된다.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 부닥치면 극단적인 감정표출을 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공감(측은지심)이 들다가, 그래도 공식 석상에서 대중적 관심사를 다루는 자리인데 좀 더 차분하게 해명(증명)하면 본인과 다른 피해자에게 좀 더 유리하지 않았을까라는 판단(시비지심)이 오락가락했을 것이다.

명문대 법대를 졸업한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한 게 기억난다. TV뉴스에서 카메라 세례를 받는 동문친구들이 대체로 두 종류인데 하나는 출세해 어떤 자리로 가는 부류, 나머지는 범죄에 연루되어 형무소로 가는 부류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대개 일인이역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조용히 사는 게 최고’라는 말을 덧붙이며 담배를 꺼내 물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뉴스뿐 아니라 드라마를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게’ 보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자신을 등장인물의 처지에 막무가내로 대입시켜 보는 것이다. 만약 내가 대통령 당선인, 아니 물러나는 대통령이라면, 홍길동, 아니 그의 형이라면, 위기에 몰린 환자, 아니 흉부외과의사라면, 저런 시어머니, 혹은 며느리를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생각하며 시청한다면 살아가며 겪게 될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수월찮이 도움을 받을 것이다.

소동 뒤에는 깨우침이 남는다. 자동차가 전복된 걸 구경하며 음악을 크게 트는 건 사리에 맞지 않다. “왜 이렇게 차가 막히지”라며 불평만 늘어놓을 수도 없다. 사고를 통해 배워야 한다. 나훈아씨 회견을 보며 얻게 되는 두 가지 교훈. 첫째, 지나친 건 좋지 않다, 둘째, 매사에는 때가 있다.

‘지나치다’는 말 자체가 이미 목표지점(행복)을 ‘지나친’ 것이다. 세인의 지나친 관심도 옳지 않지만 ‘초인’의 지나친 신비주의도 종종 문제를 일으킨다. 이사 가면 주민등록 옮기듯이 유명인은 자신의 거취를 대중에게 ‘적당히’ 알릴 의무가 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나”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단순하다. 받은 만큼 내야 하니까.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듯이 이름을 얻게 되면 납세를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유명세다.

“나 하나 떳떳하면 된다”는 말로 설득시키기엔 세상이 좀 닳았다. 귀찮더라도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억울하면 그때그때 해명하고, 잘못을 저질렀다면 제때제때 반성하는 게 좋다. 세금은 몰아서 내는 게 아니다. 부과된 세금을 기일 안에 내야 한다. 나훈아씨의 이번 소동은 유명세를 제때 내지 않아 부과된 일종의 과징금이다.

주철환 OBS 경인TV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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