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자석>광개토대왕이 이 소동을 봤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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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중국에서 가져왔다는 광개토대왕비 탁본 한벌을 둘러싸고 무분별한 애국심과 관료주의,그리고 기업홍보욕이 뒤엉켜 최근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소동은 독립기념관이 『기아그룹으로부터 광개토대왕비 초탁본이란 귀중한 자료를 기증받았다』고 호들갑 을 떨면서 시작됐다.
23일 문체부에서는 정식으로 설명회자리를 만들어 기아그룹이 독립기념관에 기증하기로 했다는 문제의 탁본을 공개했다.그러나 그 자리에는 탁본의 자료적 가치를 1차 검토했다는 독립기념관 관계자들이 한사람도 참석하지 않았다.
기아그룹측관계자만이 나와 이 탁본이 일본이 비문을 변조하기 이전에 만들어진 초탁본으로 한국고대사의 열쇠를 쥐고있는 귀중한자료임을 거듭 강조하면서 중국측이 확인해 주었다는 감정서를 공개했을 뿐이었다.
광개토대왕비 탁본은 비문해석과 관련해 지난 1백여년동안 중국.일본.한국학자들에 의해 2백여권의 연구서가 발표될 정도로 논란의 초점이 돼왔다.
그처럼 논란의 소지가 많은 광개토대왕비 탁본은 검증과 재검증이 요구되는 역사자료라는 것이 지금까지 학계의 일반론이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이 탁본이 국내에 처음 들어왔을 때 감정자리에 참석했던 국내학자와 전문가들은 기아나 독립기념관측과는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
국내의 권위있는 금석학자인 임창순옹은 그 자리에서 『상태가 비교적 좋긴하지만 석회를 바른 후의 것으로 원석탁본은 아니라고했다』고 분명히 말한다.
이기동교수나 조유전 국립민속박물관관장도 같은 의견이었는데 『엉뚱하게 신문에는 정반대로 인용됐다』며 화를 내고 있다.급기야주돈식문체부장관의 재검증 선언으로 소동은 일단락됐지만 일부에서는 이 소동이 국내기업이나 일부학자들이 중국인 들의 교묘한 상술에 휘말려 빚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아심을 품고 있다.
고구려역사를 자신들의 변방사로 편입시켜 해석해온 중국측의 일관된 입장으로 보아 문제의 소지가 있는 탁본을 반출허가해주었겠느냐는 이야기까지도 나오고 있다.
어쨌든 역사자료조차도 기업홍보 차원에서 의미를 과대포장하려는기업이나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덥석 공개한 독립기념관의한건주의는 모두 국내역사학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해프닝만 낳은 채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尹哲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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