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시대명음반>네메 예르비 쇼스타코비치 교항곡5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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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시계바늘을 잠시 돌려보자.때는 혁명기의 소련.1926년의 일이다.한 음악원 학생의 작품이 화제가 되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심심풀이는 아니었지만 결코 전력을 기울이지도 않았던 작품이 젊은 음악도의 『교향곡 1번』이었다.이 졸업작품을 접한 소련 음악계는 경악했다.흥분한 모스크바 방송에선 이렇게 보도한다.『스트라빈스키.라흐마니노프.프 로코피예프가서방으로 빠져나가도 우리는 괜찮다.이제 그들의 후계자가 있으니까.』 소위 사회주의 리얼리즘 음악의 한복판에서 그는 그렇게 떠올랐다.그리고 10년후 흥분의 여운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그는 더 놀라운 『교향곡 제5번』을 발표한다.말 그대로 이 작품은 우리시대의 신화적인 교향곡이 되었다.
힘과 용기,그리고 분노가 이 극적인 교향곡을 지배한다.1번 교향곡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오페라『므첸스크의 맥베드 부인』으로비롯된 정부의 비판에 몹시 피로해 있었다.그도 뭔가 답변을 들려주고 싶었을 것이다.악보 표지에 「정당한 비판 에 대한 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답변」이라고 적었다.작곡가는 다만 작품으로 말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비디오로 남아있는 연주중 가장 멋진 지휘를 보여준 사람은 레너드 번스타인.포르티시시모로 치닫는 마지막 부분을 극적으로 지휘해내는 번스타인의 흑백영상은 두려움없는 음악의 질주다.그러나그보다 더 예리한 통찰력의 소유자가 에스토니아 태생 지휘자 네메 예르비다.
그는 매우 기이한 변신과정을 거쳐 어느날 갑자기 우리앞에 우뚝 섰다.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이 무표정한 지휘자는 2류에 불과했다.러시아 음악에 대한 그의 탁월한 해석을 받아들이는 소비층이적었다는 이야기다.
스웨덴에서 활약하던 그를 스코틀랜드 국립관현악단이 불러냈다.
레코딩 레이블은 영국의 중간급 독립 레이블.모든 것이 불리했다.예르비는 한 작곡가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녹음을 고집했다.프로코피예프.리하르트 슈트라우스.스트라빈스키,그리고 쇼스타코비치. 비평가들은 이 쇼스타코비치 전곡연주에 찬사를 보내기 시작했다. 『교향곡 제5번』이 그중 백미(白眉)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거대한 클라이맥스와 3악장의 서정.서거 20주년을 맞는 작곡가에 대한 충실한 증언이다.
〈Ch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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