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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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써니엄마의 전화를 받고 날개에서 써니엄마와 마주앉은 건 써니를 집에 들여보내고 난 이틀 뒤였다.써니엄마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달수가 아는대로 좀 말해줘.자기 방에 틀어박혀서 내겐 아무말도 안해.뭘 제대로 먹지도 않고 울기만 하고…,방은 물건들을막 팽개쳐서 아주 엉망이 돼 있어.왜 계속 이러는지 참….』 나는 써니엄마가 앉은 자리 앞에 담뱃갑을 밀어놓고,내가 아는 만큼 다 말해주었다.써니아빠가 에이즈에 걸려서 죽은 것,써니가엄마의 남자친구들 때문에 엄마를 몹시 혐오한다는 것까지.하지만집으로 들어가기로 했으니까 써니도 어느 정도 엄마를 이해하려는마음을 먹은 걸 거라고까지.
써니엄마가 두 개비째의 담배를 부벼끄고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써니엄마가 담배연기를 내뿜는 건 꼭 긴 한숨을 내쉬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좋지…? 솔직히 말해서 겁이 나.무슨 일이 갑자기 벌어질지 모르잖아.정신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말하면서 써니엄마가 내 눈치를 살폈다.
『정상이 아니라는 건 나도 인정해요.그렇지만…조금만 더 두고보시는 게 어때요.써니는 여러가지 일을 겪었고…그래서 안정을 찾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니까요.』 『달수가도와주겠어…? 써니 곁에서 말이야.』 그 말은 여러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나는 느꼈다.나는 써니에게서 도망치려고 해서는안된다고 나를 타일렀다.
『그럼요.도움이 된다면 그래야지요.제가 자주 들를게요.』 날개의 입구에서 헤어지면서 써니엄마가 내 손을 꼬옥 쥐면서 말했다. 『고마워.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운전 조심하세요.울면서 운전하는 거…아주 위험하대요.』 그 다음날 밤 11시쯤이었다.써니엄마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왔다.써니가 낮에 주선이라는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가,조금 전에 경찰차에 실려서 왔다는거였다.시청앞에 있는 고급 호텔의 로비에서 호텔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경찰 순찰차에 넘겨졌다고 했다.지금 써니는 몰골도엉망인데다가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그러면서 써니엄마가 흑흑 흐느꼈다.
나는 곧장 양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써니가 엉망이야.주선이라는 여자애는 뭐지…? -써니가 미국에서 왔는데…아주 이상해졌더라구.그래서 내가 병원에 가보자구 써니를 설득했어.미쳤다는 게 아니라,안정을 찾기 위해선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할 거라구 말이야.내가 수소문해서 강남의 어떤 병원까지 소개해줬어.
-그러니까 뭐야.정신과 의사하고 상담하고 그러는 거야? -그렇지.써니는 미국에서 그런 걸 많이 봐서 그런지…그렇게 기분나빠하지 않고 내 말대로 해보겠다고 그랬어.그런데 그 병원에 갔다가 대기실에서 주선이라는 애를 알게 된 거야.걔도 좀 이상한애거든.그런데 둘이서 갑자기 아주 친해져서 붙어 다니고 그랬어.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양아와 통화를 끝내고,나는 다시 써니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이라도 괜찮으면 내가 그리로 가보겠다고 그랬다.써니엄마는 고맙다고만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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