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남 탓’하며 당 떠난 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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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어느 프로야구팀이 시즌 내내 꼴찌만 달리다 감독이 해고위기에 몰렸다. 팬들은 무능한 감독을 바꾸라고 아우성이지만 감독은 먼저 물러날 뜻이 없었다. 그러나 결국 구단주가 후임을 내정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감독은 “이 팀은 애초부터 선수 구성이 나빠 내가 구상한 야구를 할 수 없었다. 새 감독이 와도 별 수 없다”고 험담을 퍼부은 뒤 사퇴했다. 팬들과 선수들이 그 감독에게 어떤 생각을 할까.

 요즘 비슷한 일이 대통합민주신당에서 벌어지고 있다. 친노무현 진영의 대표 인사인 유시민 의원은 16일 “지금 통합신당엔 제가 꿈꾸었던 ‘진보적 가치’가 숨 쉴 공간이 너무나 좁아 보인다”며 탈당을 선언했다. 그는 “당원임이 자랑스럽지도 않고 좋은 정당이라는 확신도 없는 당에 계속 몸을 담는 것이 어떤 대의(大義)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마치 자신은 잘했는데 당이 문제였다는 투다. 그러나 진짜 그럴까?

 이번 대선에서 통합신당이 참패한 이유가 노무현 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극심한 반감 때문이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은 노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지난 5년간 사사건건 노 대통령을 옹위하며 강변하던 유 의원이 대선 참패를 책임져야 할 핵심 인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2300자짜리 탈당성명서에 대선 패배에 책임을 지겠다는 얘기는 한 줄도 없었다.

 그는 심지어 “정동영 후보가 당선됐더라면 더 부담 없이 탈당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렇다면 지난해 11월 자신의 팬클럽 회원들에게 “정 후보는 이명박·이회창씨보다 백 배, 천 배 낫다. 정 후보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했던 호소는 농담이었던 모양이다.

 10일 탈당한 친노 그룹의 좌장 격인 이해찬 전 총리의 처신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전 총리는 “손학규 대표가 이끄는 통합신당은 어떠한 정체성도 없이 좌표를 잃은 정당으로 변질되기 때문에” 탈당한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이 지난해 손 대표와 대선후보 경선까지 벌였으면서 이제 와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는 지적이 더 설득력 있다. 손 대표와 정치를 함께 못 할 만큼 노선이 다르다면 끝까지 열린우리당을 지킬 노릇이지 뭐 하러 통합신당에 참여했단 말인가? 유권자들이 친노 인사들에게 듣고 싶은 얘기는 자기성찰과 반성이지 ‘남 탓’이 아니다. 

김정하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