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MB 화두는 국민과의 소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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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연(經筵)’이란 고려·조선 시대에 신하들이 임금을 가르치던 자리를 말한다.

경서를 강의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전했다. 이 단어가 21세기에 다시 등장했다. 인수위가 16일 내놓은 ‘정부 기능과 조직개편’ 자료집에서 ‘대통령 특별보좌역(특보)’을 설명하는 난에 “일상 국정에는 관여하지 않으면서 경연이나 간언을 담당한다”고 설명돼 있다.

 신설된 특임장관도 국회와 정당 관계, 투자 유치, 남북관계 등 핵심 과제를 수행하거나 국회와 정당 관계의 연결 통로로 역할하면서 대통령과 대화한다. 세상과 대통령 사이의 소통을 위한 채널을 열어두기 위함이다.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박형준 의원은 17일 “청와대에만 들어가면 세상 물정에 대해 깜깜해질 수 있다”며 “이명박 당선인은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안에서는 들을 수 없는 밖의 얘기, 또 새로운 지식이나 정보에 대해서도 소통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청와대에만 있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선인 비서실에선 근래 이 당선인이 일요일마다 자신이 장로로 있는 소망교회를 찾아가는 게 바람직한지 논의했다.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 반복적으로 가는 건 경호의 ‘ABC’상 금기이기 때문이다. 측근들 사이에선 그러나 “사람 만나는 걸 즐기는 분인데, 수십 년간 만났던 신도들과 얘기하고 세상 돌아가는 걸 듣는 게 더 중요한 가치 아니겠는가. 오랜 친구들이니까 편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도 있다. 경호상 어려움만 극복할 수 있다면 계속 나가도록 하는 게 맞지 않을까”란 얘기도 나왔다고 한다. 결국 결론을 내지 못했다.

 청와대는 묘한 곳이다. 역대 대통령이 청와대에만 들어가면 여론 흐름에 둔감해지곤 한다. 국민과 격리돼 소통에 애로를 겪는다. 그래서 고집불통이 되기도 한다.

 이 당선인도 이를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국민과 소통하기 위한 장치로서 특임장관과 특보, 소망교회 예배 참석 등을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측근은 설명한다. 박 의원은 “이 당선인이 평소 ‘열린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고 전했다.

 실제 이 당선인은 지난해 12월 28일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청와대=답답한 곳’이란 인식을 드러냈다. 불쑥 “청와대 생활 갑갑하지 않으셨나요? 혹 몰래 청와대 밖으로 나가신 일은 없으신가요?”라고 물었다. 당선인 신분인 근래에도 그는 “경호나 의전이 거추장스러워 사람들을 제대로 못 만나겠다”고 푸념한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과거에 비해 만나는 사람의 폭이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수위 관계자는 “지금은 누굴 만나면 인사 때문이라고 오해해 쉽게 만나지도 못하고 있다”며 “하지만 취임한 이후엔 자주 (청와대)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들을 자주 부르실 것”이라고 전했다.

김영삼 대통령 때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청와대에서 여론을 대충 듣기는 어렵지 않다”며 “하지만 (제대로 듣기 위해선) 결국 대통령 의지가 중요하다. 듣기를 원하느냐, 어떤 정보를 듣기 바라느냐에 따라 정말 좌우되는 곳”이라고 전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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