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 핵 재처리 시설 도입 시도 … 미국서 제동 걸어 무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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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6년 핵 연료 재처리 시설을 도입하려고 했다가 미국이 제동을 걸어 계획을 포기하게 된 상세한 과정이 14일 외교통상부의 외교문서 공개로 밝혀졌다. 당시 박 대통령이 독자적인 핵 개발을 추진하다 포기한 사실은 알려져 왔지만 그 구체적인 경위를 담은 문서가 일부 공개된 것이다.

 외교부가 공개한 문서들에 따르면 75년 9월 미국은 한국이 프랑스로부터 핵 재처리 시설을 도입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에 반대했다.

 스나이더 당시 주한 미 대사는 9월 25일 노신영 외무부 차관을 면담해 “재처리 시설은 핵 확산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므로 한국과 같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역에 도입되는 것에 반대한다”며 “한국의 플랜트 도입은 다른 나라의 ○○(해독 불가능)를 유발할 것이 틀림없다. 실제 핵무기를 소유하느냐보다 한국이 핵무기를 가질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인식이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미국은 한국이 캐나다형 원자로(CANDU)를 도입하기 위해 캐나다 정부와 벌이고 있던 협상에도 압력을 넣었다. 76년 1월 주 캐나다 대사관이 한국 외무부로 보낸 전문에는 미국이 캐나다 정부에 대해 원자로 도입 차관을 한국 측에 제공하는 계획을 취소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돼 있다.

 결국 CANDU 도입 협상은 한국 정부가 재처리 시설 도입을 무기한 연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타결됐다. 원자로 도입을 위해 박 전 대통령이 핵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재처리 시설 도입을 포기한 것이다. CANDU는 월성 원자력발전소에 도입돼 지금도 가동 중이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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