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전통무예>10.古武道-농기구로 수련하는 農民무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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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옛날에는 농민과 군인의 구별이 없었다.농사를 짓다가도 전쟁이터지면 곧바로 전투에 참여했다.그렇다고 집집마다 병기가 지급된것도 아니었다.낫이나 도리깨.갈고리등 무기로 대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집어들고 백의종군했었다.따라서 농기구와 무기의 구별이 따로 없었다.
요즘도 간간이 볼수 있는 쟁기의 원래 이름은 「잠기」다.잠기는 무기인 「잠개」가 바뀐 것으로 18세기에는 「장기」로 불렸다.병장기는 이 「장기」라는 말의 잔존 형태라는 것이 국어학자들의 지적이다.
또 낟알을 떨어내는데 사용된 도리깨는 국어사전에 「옛날 병기의 한가지」라고 풀이하고 있다.『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수록된 당파창(긴 봉 끝에 세개의 칼날이 갈라져 달린 창)의 경우 거름을 떠내는 쇠스랑이 바뀐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폭정에 항거해 일어난 동학농민전쟁때 농민군의 주 무기는 농기구였다. 『남제서』(南齊書)에는 『백제가 중국 山東.浙江과 왜국을 속국으로 두고 대국의 위용을 갖추었던 490년에 위나라가 두번이나 10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왔으나 징원된 농민의 위세가 이를 격파했다』고 기술,농사로 단련된 농민의 힘이 백제를지탱한 전력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병기가 점차 현대.첨단화하면서 비로소 농기구와 병기의 구별이명확해졌고 농기구 무예는 점차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됐다.
최근들어 이같은 민중의 무예를 연구하고 보급하는 고무도(古武道)협회가 설립돼 주목받고 있다.태권도가 단일협회로 통합되기 전까지 전국 각처에 1백여개의 도장을 거느리며 무도계를 이끌던충무관 관장 이도윤(李道潤.58)씨가 각지의 향 토사학자와 중국(특히 만주등 독립운동지)을 돌며 평안도 박치기.씨름.유술.
장구치기.족치기.농기구 사용법등을 기초로 종합.복원한 것이다.
〈金基讚기자〉 고무도는 60년대 서울마포에 도장이 개설됐었으나 곧 부산 범일동으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국 瀋陽의 동북조선족대학 명예교수와 소림무술학교 명예교장직을 맡고 있는 이도윤씨는 태권도와 합기도.쿵푸등 각종 무예에 정통하다.
그는 해외에도 수많은 백안의 제자를 두고 「그랜드 마스터」로불리고 있다.
현재 고무도는 독일 알렉산더대학 체육학과 정규과목으로 채택돼한국의 얼을 심고 있으며 동북조선족대학과 소림무술학교에서도 강의되고 있다.
(051)(646)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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