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과주말을] 연인을 쫓아 전장으로 간 베트콩 여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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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밤 나는 평화를 꿈꾸었네
당 투이 쩜 지음, 안경환 옮김
이룸, 288쪽, 1만1000원

“나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다. 역경 속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지금은 엄마의 부드러운 손길이 몹시 그립다. 내게 다가와서 외롭고 힘들 때 내 손을 잡아주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사랑과 힘을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당 투이 쩜. 사랑하는 남자를 쫓아 베트콩 종군의사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꽃다운 청춘이었다. 1970년 6월 22일 스물일곱의 그녀가 미군의 총격을 받고 전사했다. 부상병을 굶길 수 없어 식량을 찾아나선 길이었다. 숨지기 이틀 전에 쓴 일기에서 그녀는 힘을 달라고 간절하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지난밤 나는 평화를 꿈꾸었네』는 그녀가 일기로 남긴 전장의 기록이다. 전직 미군정보장교가 보관해왔다. 2005년 35년 만에 공개됐고 베트남 정부에 전달됐다. 책으로 출간돼 출판시장이 작은 베트남에서 46만 부나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일기는 꿈과 열정, 사랑과 희생, 전쟁의 참혹함과 적에 대한 증오로 복잡하게 뒤엉켰다. 그녀는 동료의 무덤을 파면서 적개심으로 오장육부가 터질 것 같다가도, 죽음이 한 끼 밥 먹는 것보다 더 쉽게 일어난다는 사실에 두려움에 떨었다. 깊은 밤 침묵하는 정글에선 연인에 대한 사랑이 솟구쳐 잠을 설쳤다. 이럴 때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는 것”이라고 마음을 굳게 먹고 “나는 아직 전투 중인 전사”라고 다잡았다. 하지만 그녀가 마지막으로 기대는 건 연인 M이었다. 나약해 질 때면 “당과 인민이 먼저”라고 그녀를 거절했던 M을 떠올리며 혁명전사로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다.

일기는 감정의 밑바닥까지 전부 드러내고 있다. 낭만적이고 섬세한 표현은 다소 낯설고 간지럽다. 하지만 많은 전쟁일기들이 승리한 자의 영웅담이었다는 점에서 그녀의 일기가 특별해진다. 극단의 절망 속에서도 그녀는 정제되지 않은 솔직함으로 ‘인간의 한 얼굴’을 비춰주었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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