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운하 착공 전제한 여론 수렴은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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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한반도 대운하는 모든 절차를 밟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10일 소개한 내용이다. 이 당선인은 “국내 민간 투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실제 대운하 착공까지는 취임 후 1년이 걸린다”고도 했다. 인수위 대변인은 “당장이라도 대운하가 착공될 것처럼 알려지고 걸러지지 않은 구상이 서둘러 추진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며 “이런 오해를 풀고 국민 여론과 전문가의 의견 수렴을 거쳐 추진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거대한 대운하 프로젝트가 졸속 착공을 피하고 숨 고를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돼 다행이다. 그동안 대운하는 정치적 공방만 벌였을 뿐,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그 어떤 신뢰할 만한 타당성 조사도 나오지 않았다. 이 인수위원장도 “대선 과정에서 대운하 공약이 치열한 논쟁을 통한 공론화 절차를 거치지 못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대운하를 밀어붙이는 것은 국민과 최소한의 법적 절차를 무시하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일부에서 여전히 대운하를 서두는 인상이다. 건교부는 “현행 법률로는 환경영향평가나 문화재 지표 조사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새만금 사업이나 행정도시처럼 대운하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교부는 대운하의 신호탄으로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경인운하부터 사업 재개에 나서겠다고 인수위에 보고했다. 한나라당 내부도 소란스럽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문제는 대운하의 반대 여론을 어떻게 수렴하느냐는 것”이라며 여전히 추진 쪽에 방점을 찍고 있다. 반면 이한구 정책위 의장은 “절대 다수의 국민이 안 된다고 하면 못하는 것인 만큼 제대로 된 토론을 벌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반도 대운하는 제대로 추진되면 후대에 남겨줄 기념비적인 사업이다. 객관적이고 충분한 타당성 조사와 국민 여론 수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운하의 주인은 국민이지 결코 특정 정권이 아니다. 대운하의 효과보다 역기능이 더 심각하다는 결과가 나오거나 국민 동의를 받는 데 실패하면 새 정부는 돌팔매를 맞더라도 과감히 후퇴할 줄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