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추억의 영화 100選 33.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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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영화인마다 관객과의 관계가 모두 다르다.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관객을 즐겁게 하기 위해,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감독은 사상을 전달하는 한 방법으로 영화를 만든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은 근대문학에서 느낄 수 있는 세계를 화면으로 보여준다.그의 영화는 관객 각자가 의미를 찾게 만든다.수동적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다.그 인물속에 들어가기 위해선 보는 사람이 마음을 열어야 한다.상상력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볼 때마다 해석이 달라지는 매력이 있다.그는 주로 20세기 중산층 지식인들의 마음을 그린다.안토니오니의 3대 비극중 하나인 『밤』(La Notte.61년)은 다른 두 비극 『정사』(59년),『태양은 외로워』(62년 )에서와 마찬가지로 현대인의 공허를 그리고 있다.
『밤』은 10년간 같이 살던 부부가 감정이 무뎌졌을 때 오는허전함.외로움,친한 친구의 죽음 앞에서 느끼는 삶의 허무를 그린다.중반부터 시작되는 파티장면은 상류사회의 거짓된 모습을 보여준다.아침나절 병원에서 시작해 그 이튿날 새벽 파티를 끝마치고 돌아갈 때까지의 긴 하루와 밤사이에 펼쳐지는 이야기다.첫 장면에서 보이는 「죽음을 앞둔 환자의 고통」같이 영화 전체가 아픔에서 헤맨다.늘 삶을 아끼고 사랑을 주어왔으며 가장 친했던친구에게 내려진 죽음의 선고는 여 주인공 리디아(잔 모로扮)에게 사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유명한 소설가인 남편 조반니(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扮)의 출판기념 리셉션에서 팬들에게 둘러싸인 채 점점 멀리 사라져 가는 남편을 무심히 바라보던 리디아는 무리에서 빠져나 와 밀라노 시내와 교외를 정처없이 걷는다. 부부관계란 무엇인가.지금 우리들의 관계는 어느 지점에 와있는가.앞으로 우리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이런 의문과 두려움을 갖고 대사도 없이 화면 구도.빛.그림자만 이용해 외로움을 보여준다.또 큰 건물을 아주 작게 잡아 도시 소음에 억눌려 있는 현대인의 지친 모습을 잘 표현한다.
안토니오니 감독은 상류사회의 파티에 참석했다가 너무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는 영화를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남편을 더이상 사랑할 수 없다고 확인하는 리디아의 모습을마지막으로 하는 이 영화는 대단히 부정적이고 염세주의적인 영화다. 파리=尹靜姬(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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