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시장친화적인 보육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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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필자는 보육 관련 공무원·정치인·학자 및 시설 공급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보육을 보는 시각 교정 없이는 보육정책이 바뀔 수 없다’ 는 결론을 내렸다. 상당수의 보육 관계자들은 보육을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보고 ‘공공성 강화’를 주장한다. 복지와 공공성 이념에 빠지면 정책은 규제 중심이 되고 정부는 팽창하지만 시장은 발전하지 못한다. 참여정부 동안 보육 관련 정부기관이 팽창하면서 민간은 회계상 규제, 공동주택 보육시설 국공립화, 2층 이상 상가 보육시설에 대한 재산권 규제 등 새로운 제약을 받게 됐다.

보육정책은 저소득층에 대한 정부 배려와 함께 다양한 보육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를 시장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저소득층을 위한 보육정책은 이들 계층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정부가 최대한 도와야 한다. 일정 소득 수준 이상의 계층에 대해서는 시장기능이 작동하고 이를 통해 원하는 형태의 보육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비자는 본인이 원하는 보육서비스를 통해 만족을 얻고 공급자는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시장을 통해 소비자와 공급자가 모두 만족하게 되고, 부수적으로 보육산업도 발전하게 된다. 보육정책도 경제 살리기 정책의 범주에 들 수 있는 것이다.

보육정책은 크게 두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저소득 계층을 위한 정부 지원과 일정 소득 수준 이상의 계층을 위한 보육시장의 정상화다. 이 당선인은 후보 시절에 보육에 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보육예산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킨 참여정부의 예산보다 두 배 이상인 파격적인 수준이다. 이 예산은 모두 일정 소득 수준 이하의 계층에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민간보육시설이 자발적으로 들어서지 않는 농촌과 중소도시에는 국공립 시설을 확충하고, 민간보육시설이 많은 대도시의 경우에는 수요자들에게 보조금으로 지원해야 한다. 참여정부에서 만들어진 기본 보조금과 같이 시설 공급자들에게는 보조금을 주어서는 안 된다.

보육시장의 정상화 정책에는 정부예산이 필요 없고, 규제철폐 차원에서 과감한 개혁마인드만 있으면 된다. 현재 보육시장은 가격규제와 영리법인의 시장진입 불가라는 두 가지 규제가 있다. 보육서비스가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되기 위해서는 가격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 가격 대비 서비스 질에 대한 판단은 소비자가 하면 된다. 정부가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시대에 동떨어진 정책이다. 또한 현재 보육시장에는 영리법인이 진입할 수 없으므로, 보육산업에 자본이 투입될 수 없다. 풍부한 보육 관련 인적자원은 있지만 영리에 대한 무지와 오해로 인해 자본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보육산업은 발전하지 못한다. 영리법인의 시장 진입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복지 수준에 머물던 보육을 산업으로 다양화할 수 있다.

이명박 당선인은 경제 살리기 정책으로 민심을 얻었으며, 규제 철폐와 정부개혁을 통해 민생경제를 살리겠다고 했다. 보육정책도 이러한 기본정책의 틀 속에서 추진해야지, 복지와 공공성 논리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 보육정책은 정부와 시장 역할을 구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필요로 하지만 보육 관련자들의 사고는 시장불신이 너무도 팽배하다. 새로운 보육정책을 짜는 현 단계에서 과감한 사고 전환의 개혁을 기대해 본다.

현진권 아주대 교수·재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