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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금융 중심 되려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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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근 워싱턴을 방문한 한국인들은 한국을 새로운 국제 금융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외국인 투자가 집중되고 있는 인천.서울 지역을 아시아의 대표적인 국제 금융 서비스 센터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 국제 금융 중심을 꿈꾸는 나라는 한국만이 아니다. 상하이(上海) 푸둥 지구와 베이징(北京)도 군침을 흘리고 있다. 뉴욕과 런던에 이어 세계 3위의 금융 센터인 도쿄(東京)도 마찬가지다. 동남아 지역의 금융 중심으로 떠오른 홍콩.싱가포르도 계속 세를 불리고 있다.

아시아의 금융 중심을 놓고 여러 나라(도시)들이 벌이는 치열한 경쟁에서 인천.서울이 이길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솔직히 말해 '없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인천.서울은 금융 중심으로서의 역사가 일천하다. 또 한국은 이웃의 경쟁 국가들보다 덩치가 작다. 금융 중심은 덩치가 크고 경제력이 강한 나라와 결합돼 성장하게 마련이다. 산업혁명 시기에 런던이 세계의 금융 중심이 된 것이나 20세기 초 미국의 부상과 더불어 뉴욕이 세계의 금융 중심을 차지한 것이 그 예다.

물론 금융 중심의 역사가 오래 됐다고 해서 계속 주도적인 지위를 누린다는 보장은 없다. 한국은 30년 전까지만 해도 철강.조선.전자공업 분야에서 경험이 전무했지만 지금은 이 분야들을 주도하는 국가가 됐다. 사실 한국이 높은 점수를 받을 요소도 적지 않다. 금융 서비스의 인프라에 꼭 필요한 정보기술(IT)분야에서 한국은 최첨단 기술로 세계를 이끌고 있다. 또 인천 영종도에 문을 연 신공항 덕분에 서울의 전 지역이 비즈니스 거점으로 쓰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런 장점들은 한국만 가진 게 아니다. 중국과 일본도 세련된 IT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상하이 푸둥지구 역시 3년 전 신공항의 문을 열었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인천.서울이 국제 금융 중심이 되려면 금융 서비스 부문에서 활동 중인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도쿄가 최근 몇 년 동안 국제 금융 중심 지위를 상실해 온 이유도 런던과 뉴욕같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시장을 개방하는 데 주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이 주요 산업분야에서 외국인들의 투자 의욕을 꺾었던 과거의 정책을 과감히 폐기할 경우 국제 금융 중심이 되려는 경쟁에서 좋은 점수를 딸 것이다.

외자 유치만큼이나 중요한 게 국내 금융 서비스의 활성화다. 이 점에서 한국은 1997~98년 외환 위기 덕을 많이 봤다. 그 이전 한국의 금융회사들은 체질 약한 미숙아들이었다. 그러나 98년 이후 한국 금융회사들은 구조조정에 성공해 이제 6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효율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부실 채권의 증권화 같은 분야에서는 국제적으로 선도자적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 대부분은 국내의 금융 개혁이 완벽히 마무리되지 못했고, 급증한 가계 부채와 같은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는 점을 시인하고 있다. 한국이 국제 금융 중심이 되려면 국내의 금융 개혁과 외국인 투자 유치 둘 다 성공해야 한다.

이와 함께 기업 운영의 투명도를 높이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한국은 이미 이 분야에서 많은 진보를 이뤘다. 국제 회계 표준을 채택했고 소액 주주의 권리를 신장시켰다. 또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움직임을 파헤쳐 기소함으로써 기업 운영의 투명화를 향한 의지도 보여주었다. 이 같은 기업 부문 개혁이야말로 국제 금융 중심이 되려는 한국에 확실한 카드가 돼줄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여러 가지 이유로 기업 개혁에서 뒤처져 한국에 우위를 내주고 있다. 이 우위는 한국에 매우 중요하다. 금융회사의 힘은 신뢰와 신용에 좌우되는데, 신뢰와 신용은 기업 운영이 투명하고 소액 주주의 권리가 보장되는 환경에서 다져지기 때문이다. 한국이 국제 금융 중심이 되려면 단순히 중국.일본보다 잘하는 수준이어서는 안 된다. 기업 운영의 투명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로 인정받아야 한다. 이 점에서 한국은 많은 진보를 이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에드워드 M 그레이엄 국제경제연구소(IIE) 선임연구원
정리=강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