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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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2부 불타는 땅 봄날의 달빛(7) 은례가 눈을 껌벅였다.
『못 들었구만.아 시아버지도 다녀가시는 거 같던데,명조엄마만깜깜 그믐이었군 그래.』 『무슨 일인데요?』 영주댁이 쯧쯧 혀를 찼다.
『저런 몰랐구만.』 무슨 비밀이라도 되는 듯이 주위를 둘러보고나서 영주댁이 목소리를 낮췄다.
『죽었대요.죽었다고 전갈이 왔다잖아.』 『누가요?』 『누군.
태길이 삼촌이지.』 『아니,그 총각이요.』 『누가 아니래.그러니 부모 마음이 오죽하겠어.태길이 할머니는 그냥 기함을 해서 나가자빠지고… 애비 에미 되어서 세상에 못할 일이 자식을 앞세우는 건데,그것도 성혼도 못한 자식을 생죽음 시켰으니.』 『그태길이 삼촌은 엄장도 두둑한 게 힘도 좋던 총각인데,아니 어쩌자구.』 『그러니 말이지.세상이 그냥 하늘하고 땅하고 맷돌질을해버려야지.이래 가지고야 못 살지,못 살아.』 샛바람치듯 은례의 몸을 지상에 대한 생각이 휩쓸고 지나갔다.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풀썩 주저앉을 것만 같아서 은례는 등에 업은 아이에게 팔을 돌려 두 손을 힘주어 깍지를 낀다.
은례가,이 입빠른 예펜네가 제발 그 소리만은 말았으면 하는 말을 영주댁은 했다.
『명조네야 무슨 일이 있겠어.인명은 재천이라는데,남의 일이거니 해요.』 아이의 등을 두어번 두드려주고 나서 영주댁은 돌아섰다.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던 은례는 영주댁의 손이 닿았을 자리의 포대기를 손을 돌려 툭툭 털어냈다.
마치 무언가가 옮겨붙기라도 한듯이.
아니다.아니야.고개를 저으며 은례는 영주댁이 사라진 골목길을바라보고 있었다.명조아빠,뭐든지 당신을 비켜갈 거예요.당신이 누구신데요.
휘 바람이나 쏘이겠다던 마음도 시들해 져서 은례는 오던 길을뒤돌아 걸었다.너나 없이 살기 어려운 때여선가,길가의 가게 안도 썰렁하다.이제 좀 지나면 누렇게 부황든 아이들이 봄볕을 쪼이며 저 길가에 나와 앉아 있겠지.
큰일은 큰일이다.집안에 있는 제기까지 거두어 가는 판이니,이게 무슨 사단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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