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이쓰는가정이야기>세밑에 되새기는 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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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얼마전 병원에서 같이 근무하던 동료가 1년간 외국 연수교육을떠나게 되었다.한해를 보내는 망년회 겸 그 친구의 송별모임에서오랜만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평소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친구는 한국에 여러 누님들이 있는데도 굳이 어머 님을 모시고 떠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올해가 가족의 해라고 떠들면서도 기회만 되면 힘없는 부모곁을떠나려고 하는 요즘 세상에서 이 친구의 결심은 한해를 되돌아보기 위해 모인 우리 모두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그날 오후 병실 회진을 돌던중 수년전부터 중풍으로 반신불수에실어증까지 겹친 어느 할머니 곁에 한동안 머물렀다.
수개월 전부터 자식들의 발길은 끊기고 간병인을 통해 병원비만받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채 눈만 꿈벅거리며 항상 빙그레웃으시는 할머니.병으로 노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그나마 불행중 다행일까.이것이 현대판 고려장인가 보다.
11남매의 종가집 맏며느리로 시집오셔서 온갖 풍파속에서 남편과 4남1녀 자식들 뒷바라지에 고생만 하시다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잘난(?)자식들은 제길을 간답시고 뿔뿔이 떠나가고 두분만이 고향에 외롭게 남게되었으니 어찌 자 식된 도리를다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나마 국민학교 2학년인 큰딸 미선이의 일기가 위안이 됐다.
「친할머니께서 우리집에 오셨다.학교에 갔다오니 신발장에 휠체어가 있어 할머니께서 오신줄 알았다.나는 할머니가 오래 계신 것이 너무 좋다.」 비록 같이 살진 않지만 그나마 아이들의 가슴속에 할머니.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넘치고 있으 니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닌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얘들아! 신정에는 할아버지 댁에 간다.할머니 휠체어 밀어드리자!』 『야!신난다.』 아이들의 함성이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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