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에세이-소설가 金知原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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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옛날에 소금인형이 있었다.소금인형은 어느날 바다의 깊이를 재러 길을 떠났다.바다에 가자마자 인형은 녹아버렸으므로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집을 나서면 현대문명과 도시의 잡답(雜畓)에 혼란스러워져 집으로 돌아 오며 바다에잃어버린 소금인형을 생각한다.
「밖에 나가는 것이 참으로 두렵습니다.1994년은 가슴이 덜컥덜컥 내려앉는 대형사고들이 터진 한해였습니다」라고 TV 뉴스시간에서 총정리로 표현되는 한해가 간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때 다시는 이 지구상에 유대인 학살같은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인류는 결심했으나 오늘도 지구표면에는 전쟁이 그치질 않는다.어느 나라나 자기들은 평화를 사랑한다고 말한다.그리고 아마도 그것은 진실일 것이다.우리 모두는 최선의 의도를 가지고 대부분 같은 것을 원하며 산다.
사랑이 있는 삶,전쟁이 아닌 평화,살기 편한 집,몸에 맞는 옷,건강한 음식….나는 나쁜 일만 하며 살다가 고생하고 죽어야지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강위에다 다리를 놓으며 이건 무너질 다리니 나도 건너지 말고 내 가족도 건너지 말라고 해야겠다하지는 않을 것이다.
길에 버려진 아이를 부드럽게 안아 눈물을 닦아주는 아버지가 운전대를 잡으면 교통법규를 어기고 추월을 하는 사람이며,가난한광주리 장수와 싸움을 해가며 물건을 사는 주부가 자신도 모르는사이에 물에 빠진 어린이를 목숨을 걸고 구해내 기도 한다.
이 모든 면모가 한 인간의 풍경속에 녹아들어 있다.아픔속에는이미 치유가 있으므로 치유의 경험을 갖기 위하여는 바라보기만 하는 것보다 경험하고,간접경험이 아니라 직접경험을 하여 새로운깨달음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면,1994년은 여러 사람들의 억울하고 아름다운 희생이 따른 귀중한 해였다.
옛것을 가게하지 않고는 새것을 맞이할 수 없다면 우리 사회의병폐가 곪아터져 목숨과 재산을 잃은 분들은 그러므로 우리 모두의 검은 그림자를 안고간 용기있는 사람들이었다.우 리는 언제나다시 시작하고 싶다.아직 얼마간의 시간이 있는데도 새달력을 달며 새봄과 새여름과 새가을과 새겨울을 꿈꿔본다.
지구가 해를 한바퀴 돌면 1년이 간다.우주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을 보면 지구는 깜깜한 우주의 바다에 공같이 막막하게 떠있다.라디오.TV.컴퓨터등의 전자파와 구름을 주위에 두르고 숨을쉬는듯,생각을 하는듯한 갸륵한 그 모습.
실제로 지구는 사진에서 보는 공만하게 작아지고 있는 것같다.
기차도 빨라지고 비행기도 빨라지고,세상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지구 어디서나 비슷해져 간다.뉴욕이나 서울이나 홍콩이나 도시일수록 거리모습이 비슷하고 패션이나 음식.교통법규.예 법.신문.잡지.방송.학교교육등이 같아져 간다.
어떤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을때 전화를 받지 않으면 그 사람은더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농담이 나올만큼 개인휴대 통신시대가 오리라 한다.가족끼리도 각자 다른 전화번호를 갖고,전화기가 주머니에 들어가거나 수첩 또는 손목시계 크 기로 축소돼 항상 휴대할수 있어 상대방이 어디에 있어도 통화가 가능하리라 한다. 그러니 우리들은 서로 얼마나 가까이 있으며 지구는 얼마나 작아지는가.우리의 의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구인의 의식으로 넓혀진다.지구인으로 성장해 갈수록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깨닫게되며 우리의 것을 가지고 우리도 이 지구에 당당히기여함이 고맙고 기쁘다.변함이 없는듯한 변함이 시간의 흐름이다.모든 것은 생각했던 곳으로 돌아오며 사계절의 변화란 반복뿐인듯 보이나 반드시 예전의 장소로 돌아오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
옛사이클과 새 사이클을 이루는 전환점,그 시작의 장소가 어디가되느냐에 모두가 한결같은 생각은 아닌 것같다.
음력으로 새해도 있고 유대인의 새해도 있고 또 개인에게도 새로운 사이클의 시작이 있겠다.개학하는 날,세금 내는 날등….그러나 우리 모두는 일제히 1994년 12월31일 자정,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한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는다.흐 르는 시간에다 금을 긋고 낡은 것들은 다시 새것이 된다.
1년전 역시 이같은 각오와 희망속에 시작했던 1994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회고(回顧)와 반성속에 새로움을 약속한다.통일의 염원은 그대로 가지고 바로 여기 다가온 1995년을 바라본다.1994년과 1995년의 사이는 흐르는 시간과시간사이,아무것도 없고 정결한 곳,그곳에서 우리 모두는 일제히한살씩 나이를 먹는다.
“아픔속에는 이미 치유가 있으므로 치유의 경험을 갖기 위하여는 바라보기만 하는 것보다 경험하고,간접경험이 아니라 직접 경험을 하여 새로운 깨달음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면,1994년은여러 사람들의 억울하고 아름다운 희생이 따른 귀 중한 해였다.
” .1965년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작품집 『폭설』『겨울나무사이』『알마덴』『모래시계』『잠과 꿈』『꽃을 든 남자』『물이 물속으로 흐르듯』『돌아온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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