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가슴이 필요한 정부개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정부 개혁의 기조는 명확해졌다. 정부의 역할을 축소 조정하면서 시민사회와 시장의 기능을 확충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시장을 견실하게 하고 시민사회의 성숙을 도모하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지향이다.

이미 한국 사회는 정부의 손만으로 손질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건강한 시민사회의 기여와 개방적인 시장의 역동성이 반드시 요구되기 때문에 정부는 ‘기본으로 돌아가야(back to the basics)’ 한다. 단출한 기구로 필요한 일을 철저하게 하는 정부가 돼야 한다.

시민사회·시장·정부 간에 유기적인 분업을 구현하면서, 정부가 지혜롭게 제자리를 찾아가게 하는 것은 개혁하는 사람들의 머리만 가지고는 어렵다. 그것을 연극 ‘미스터 마우스(Mr. Mouse)’에서 바로 볼 수 있다.

IQ 68에 7살 수준에 머물러 있는 32살의 정신지체아 서인후는 생쥐를 이용한 ‘뇌활동 증진 프로젝트’에 성공한 강 박사의 권유로 외과적 수술과 정신치료를 받는 실험 대상이 된다. 인후는 천재가 되는 수술을 받은 뒤 생쥐보다 빨리 미로를 빠져나가는 등 정신연령을 회복하고 드디어는 완벽한 천재가 된다. 사랑도 하고 정신분석학자의 도움으로 과거 기억도 되찾는데…. 그러나 천재 치료의 부작용으로 다시 지능 퇴화가 진행된다. 인후는 되찾은 악몽에 시달리면서 빨리 늙어 가는 이중의 고통에 짓눌린다.

정부 규모를 줄이는 작업에는 외과 수술이 필요하지만, 새 정부의 국정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개혁가의 외부 수술만으로는 어렵다. 최근 정부는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 협력통치(governance)를 빌미로 각종 연구소를 설치하고 외부 전문가와 사회단체의 참여를 확대해 왔다. 그러나 외양은 그럴듯했지만 실제는 역시 관료주의가 판을 쳤고, 전문성을 팽개친 조직이 적지 않게 늘어났다. 전문성을 축적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두국 수준의 문제 해결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작은 정부를 만들어가는 방법은 다양하게 개발돼 있다. 정부 부처를 기본에 충실하게 배치하고, 인적·물적 팽창을 억제하면서, 정부와 시장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작업을 지속하면 된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과를 내는 것이다. 진정한 업적은 전문성 위에서 세워진다. 세계경제 환경이 어려운 때에 국민의 높은 기대를 충족시키는 정부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단지 지진아에게 실험적 수술을 하는 방식으로는 불안하다.

공공부문 종사자들이 개혁 과정에 가슴으로 나서야 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양극화도 노령화 문제도 해결의 기회를 잃는다. 국가적 현안을 정통적인 방식으로 돌파하자는 것이지 공공 종사자가 미워서 하는 개혁이 아니다.

공공(公共) 종사자들은 실적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절차 준수와 내부 결재에 매몰된 행정에서, 비용을 따지고 국민의 삶에 나타난 성과로 말하는 실증적(evidence-based) 행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과학적인 인과 논리가 박약한 일은 없애야 한다. 막연한 지원이나 진흥 행정은 안 된다.

이미 정부 개혁의 환경은 충분히 조성됐다. 개혁 작업을 인과 논리에 맞추어 순서대로 하나씩 재설계하는 일이 남았다. 실험수술 이후 부작용과 조로(早老)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개혁을 하려면 반드시 공공 종사자들의 마음의 변화가 필요하다. 지속될 수 있는 내부 개혁의 방안을 그들은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곤 서울대 교수·한국행정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