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에 취한 한국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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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소기업을 다니고 있는 김모씨(30)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스타일이 좋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소위 명품이라고 불리는 값비싼 브랜드의 제품들을 선호하고 즐겨 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한 달 월급 중 절반 이상을 명품 구입에 사용하고 있다. 새로운 제품이 나오거나 마음에 드는 물품을 발견할 때 마다 자연스럽게 구매하는 것. 김씨는 "이제는 습관처럼 명품을 구입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 서울 소재 대학을 다니고 있는 이모씨(23·여)는 겨울방학을 맞아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다. 이유는 명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다. 이씨는 과외는 기본이고, 주말에 1~2건의 아르바이트를 추가해 돈을 모을 예정이다.

이씨는 "겨울방학을 맞아 개인적인 시간도 보내고, 여행도 가고 싶지만 내가 원하는 명품을 갖기 위해서 약간의 개인적인 고통은 감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7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연말연시를 맞아 힘겹게 추운 겨울을 하루하루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사회 한쪽은 아직도 명품에 열광하며 자신의 부족한 심리적 허영심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 명품 구입 꾸준히 증가

명품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서울 시내 주요 백화점 내 명품 매장들의 매출 신장률은 매년 두 자릿수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산업자원부의 백화점 상품군별 매출 증감률 추이를 살펴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명품매출 증가율은 ▲ 1월 18.2% ▲ 2월 13.0% ▲ 3월 16.1% ▲ 4월 15.3% ▲ 5월 15.3% ▲ 6월 13.8% ▲ 7월 12.4% ▲ 8월 21.0%를 나타내는 등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또 루이비통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액은 1213억원으로 2005년(893억원)보다 35.8% 급증했고, 페라가모코리아도 매출액이 478억원으로 지난해(433억원)보다 10.4%, 순이익은 70억원으로 8억원(12.9%) 늘었다.

이밖에 에르메네질도제냐코리아는 매출액이 2005년 181억원에서 지난해 210억원(16.0%), 불가리코리아는 215억원에서 276억원(28.4%)으로 펜디코리아는 120억원에서 162억원(35%)으로 증가했다.

이렇게 명품에 대한 구입이 날이 갈수록 증가하면서 이른바 짝퉁 명품의 증가도 늘어나고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2003년 이후 올해 8월까지 국내에서 1만2690건, 26만7352점의 해외상표 위조 상품이 단속됐으며 이 가운데 53.4%인 7316건이 샤넬, 루이뷔통 등 이른바 짝퉁 명품이었다.

위조 상품 브랜드별로 샤넬이 2174건으로 제일 많았고, 루이뷔통(1592건), 까르띠에(1070건), 구찌(1038건), 페라가모(778건), 불가리(664건) 순으로 조사됐다.

◇ 초·중·고생…"명품 아니면 안 돼"

한국사회의 명품 선호도는 연령, 성별, 지역을 가리지 않고 신드룸이 만연해 있다.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해외명품 구입은 이제 직장인, 대학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명품 바이러스에 잇달아 감염됐다. 일부 여고생들이 명품 구입을 위해 계를 만든다는 얘기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또 초등학생들은 고가의 명품을 구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진짜와 똑같이 만든 모조품이라도 구입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명품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체에 만연하면서 10대들이 이제는 가짜 명품에까지 눈을 돌리고 있다. 청소년들의 이같은 명품 선호 현상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욕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고등학교 2학년 이모양(18)은 "가짜 명품이라도 구입하는 이유는 친구들에게 비싼 명품을 하고 다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측면이 크다"며 "제품의 실용성이나 디자인이 뛰어나서 구매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 윤모양(14)은 "일단 명품을 하고 다니면 같은 반 친구들이 약간은 부러워하는 시선이 많다"며 "명품 구입은 다른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밝혔다.

◇ 왜 명품선호 버리지 못하나…

왜 한국 소비자들은 명품 소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명품 소비자들에게 명품은 단순히 제품의 의미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때론 스타일과 안목을 보여주고, 때론 신분과 위치를 노출한다. 위치와 신분에 민감한 한국사회에서 자신을 노출하는 명품의 역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한국인의 지나친 명품 사랑에 대한 이유로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표현할 수 있으며 나 자신을 상류층으로 표현해 줄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가 집필한 '사치의 나라 럭셔리 코리아'에 따르면 명품 구입은 일종의 사치라고 규정했다.

김 교수는 "명품의 높은 가격은 고품질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며 "그 속에는 부유층에 속해 있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다른 계급과 구별되고 싶어 하는 전력이 숨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경우 서양 귀족 문화에 대한 알지 못하는 선망 또는 원산지 효과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며 "젊은 층의 경우 소비를 놀이로 대신하는 성향이 커지고 있어 명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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