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등급제 폐지하고 대학에 선발권 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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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명박 차기 정부의 교육 과제는 대학·공교육 경쟁력 강화 등 숱하게 있다. 그러나 수많은 학생·학부모와 대학을 질곡으로 몰아넣은 대입 제도는 무엇보다 시급한 숙제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입 정책은 규제만 남발한 끝에 실패했다. 이제 서둘러 잘못을 바로잡고, 더 이상 불필요한 ‘대입 혼란’이 없도록 해야 한다.

수능·내신 9등급제는 당장 대수술하길 바란다. 우리 학생들은 3년 내내 죽음의 트라이앵글(수능·내신·논술) 속에서 악전고투했고, 사교육은 더욱 늘었다. 수능에서 문제 하나 틀렸는데 2등급을 받는 등 이해하지 못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능 등급은 운이란 말까지 나왔다. 결국 등급제는 법의 심판대에 올랐고, 폐지·보완 여론도 높다.

정부가 대입 제도를 바꿀 때는 법에 의해 3년 전에 예고해야 한다. 대입의 예측 가능성을 위해선 당연하다. 그러나 등급제의 경우 공정성·합리성·정확성·변별력에서 치명적인 결점이 확인됐다. 이런 제도를 3년간 유지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이 당선자도 대선 때 수능 등급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정치 광고를 냈다. 대입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많은 학생을 울리는 제도라면, 어떻게든 없애는 것이 대의라고 본다.

학생 선발권도 선진국과 같이 확실하게 대학에 돌려줘야 한다. 대입이 자율화되면 전형 방법이 다양해져 대입 길이 넓어진다. 그러면 수능·내신 비중이 낮아져 사교육이 줄고, 보다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할 수 있다.

이 당선자도 교육 공약에서 ‘대학의 학생 선발과 재정에 대한 불필요한 간섭 등 관치(官治)를 완전히 철폐하고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1단계 수능·내신 반영 자율화, 2단계 수능 과목 축소, 3단계 완전 자율화하겠다는 3단계 대입 자율화 방안은 납득하기 어렵다. ‘대학이 본고사 없이도 학생의 잠재력 등을 고려해 선발할 능력과 제도적 기반이 구축됐을 때 자율화하겠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대입 자율화의 핵심은 본고사에 있다. 영어 등 특정 과목 중심의 시험으로 돌아가자는 뜻이 아니다. 대학이 알아서 뽑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대입 자율화인가. 대학교육협의회는 지난달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학생 선발권, 대학 운영권을 자율화하라고 요구했다. 우리도 교육 정책이 ‘규제와 평준’에서 ‘자율과 경쟁’으로 전환돼야 대학과 공교육이 산다고 강조해 왔다. 많은 국민이 지지한 데는 교육 회생에 대한 염원도 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학을 믿고, 서둘러 과감하게 대입 자율화를 추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