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시인 김기택.이진명씨 나란히 詩集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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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각기 독특한 詩세계를 보여온 부부시인 김기택.이진명씨가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란히 자신들의 두번째 시집 『바늘구멍속의 폭풍』과 『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니』를 냈다.
이 부부는 세계를 영원히 순환하는 회귀의 공간으로 보는데 의견일치를 보이면서도 그 안에서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씨의 시는 「육체의 시학」으로 불릴 정도로 사람 혹은 동물의 신체에 관한 시가 유난히 많다.김씨에게 육체는 축소된 우주다.육체의 논리인 심리와 생리관찰을 통해 김씨는 세계의 원리를상상해 낸다.
『달려가던 승용차가 가볍게 들어올리자/사내는 조금도 꾸밈이 없는 동작으로/빙그르르 공중에서 몸을 돌리고/전혀 무게를 두려워 하지 않고/아스팔트 위로 내리꽂혔다/얇은 가죽으로 막아놓은60킬로그램의 비린내/안에 들어 있던 분노와 꿈 이/일제히 터진 곳에서 쏟아져 나왔다/…꿈은 흰 쌀밥 위로 오르는 김처럼/모락모락 공손하고 착하게 흰 골을 떠나/거대한 스모그 속으로 스며들었고/분노는 아스팔트 갈라진 틈을 따라/하수도 속으로 얌전하게 흘러들어갔다/…』(「한 명의 육체를 위하여」) 김씨가 그려낸 세계는 처음도 끝도 없는 원형의 폐쇄회로이며 인간은 그안에 던져져 있다.그 안에서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빈 위장을 채우고 다시 비움으로써 생명을 유지하는 맴돌이의 양상을 띤다.
반면 이씨의 시는 종교적이다.그중에서도 특히 불교적인 색채가강하다.이씨는 윤회와 같은 회귀의 세계와 현세적인 욕망사이에서갈등하고 분노하지 않는다.대신 한껏 자세를 낮춰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것들을 받아들인다.『…/슬픔은 자신뿐 아니라 남까지도상하게 하지 깨우치지요/무우수(無憂樹)위로 몇 차례 비가 흩뿌리고 가면/햇빛 좋은 날을 골라 의자를 내와 그 위에 올라서서/무우수 크낙한 이파리들을 한장 한장 닦아내지요/탄생을 이야기해오고 깨달음을 이야기해오는/황 금빛 덩어리/…』(「나무 이름하나」) 이씨의 시에 등장하는 집과 방과 뜰은 좁고 작고 낮다.그러나 아름다운 모습을 띠고 있다.그는 현세적 욕망을 절제해작은 것들을 받아들이며,그 유보된 욕망을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으로 길들여 놓는다.이씨에게 세계는 인식의 대상이 아니 라 「품었던 생각,꿈,마음등을 뿌려 아름답게 가꾸는 대상」으로 다가간다. 〈南再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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