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부引責論 野 내분심화-날치기 충격속의 民主 향후행보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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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 여당의 압박이 가해지면 야당은 단결됐다.이게 야당가의 정통이다.그러나 이번에는 이런 등식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야당내분의 상처는 민자당의 예산안 강행처리에도 불구하고 봉합되지 않고 있다.오히려 계파의 반목은 심화되는 양상이다 .무엇보다 다가오는 전당대회를 모두 의식하고 있다.
이기택(李基澤)대표는 삭풍의 광야에 선 모습이다.그는 2일 오전 최고회의에서 자신의 장외투쟁방침이 꺾이는 아픔을 맛보았다.최고위원들은 여당의 예산안 단독처리를 방치하자는 그의 주장을뒤집었다.최고회의가 끝난뒤 李대표의 표정은 어두 웠다.측근들은『그동안 李대표의 입장을 지지해온 박일(朴一).이중재(李重載)고문까지 李대표 방침에 반대했다』며 허탈해했다.
두번째의 타격은 민자당으로부터였다.이날밤 민자당은 예산과 추곡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민주당은 변변한 저항한번 해보지 못했다.대책논의를 위해 열린 의원총회에서 일부 의원들은 지도부 인책론을 제기했다.『당이 이렇게까지 무력해진데 대해 지도부가 반성해야 한다』는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동교동계도 고민이다.동교동측은 李대표가 12.12를 빌미로「홀로서기」를 위해 김대중(金大中)이사장에게 본격 반기를 들었다고 판단하고 있다.이번 기회에 李대표를 그동안의 동반자 관계에서 적대적 관계로 설정하고 있는 분위기다.그러나 대안이 마땅치않다.李대표와 결별할 경우 당이 깨질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치 않을 수 없다.지자체선거도 의식하는 눈치다.
김상현(金相賢)고문을 중심으로 비주류측의 주류에 대한 비판은더욱 거셀 전망이다.李대표와 당권을 놓고 경쟁해온 金고문은 이번에 드러난 李대표의 지도력 문제를 집중 부각시킬 태세다.
특히 비주류의 이같은 공세는 조기전당대회 소집요구라는 형태로현실화될 전망이다.
당의 기류를 종합해볼때 3일의 부천집회가 끝나고 나면 자연스럽게 대표 책임론과 전당대회 개최문제가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李대표측은 아직도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카드가 남아있다고 한다.자신의 대표직 사퇴와 소속계보 의원들의 동반 의원직사퇴,단식농성 돌입등이다.의원직사퇴는 동조자가 적을 경우 역으로 李대표를 인책론에서 해방시켜 줄 수도 있을 것 이다.당이 분열된채 대표를 따르지 않아 어쩔수 없었다는 점이 부각될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이 방안은 최악의 경우 당이 깨질 것까지 각오하는 수순이다.그래서 李대표가 결단을 감행할지는 두고봐야 하겠다. 李대표의 수중에 남아있는 다른 카드는 대여강공책.정부와 민자당이 비록 예산과 추곡안을 처리했지만 아직 세계무역기구(WTO)가입동의안은 남아있다.세도(稅盜)등 민생문제에서 실정(失政)공격의 여지도 남아있다.이러다가 여야영수회담이라도 성사되면 李대표에게는 활로가 열릴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은 金이사장과 李대표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느냐가가장 중요한 변수다.金이사장과 동교동계가 계속 李대표와 제휴할가능성은 이번 거사의 실패로 李대표가 별다른 세를 구축하지 못했다고 판단할 때 오히려 높아질 수도 있다.그 러나 이것은 李대표에게는 굴욕이다.방향이 어느쪽이든 李대표는 추운겨울을 보내게 될 것 같다.
〈朴承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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