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날치기 百態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훌륭한 희극(喜劇)을 판별하는 방법은 그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되고 사람들이 그에 관해 얼마나 오랫동안 이야기하느냐 하는 것이다.오늘날 의회(議會)는 여러해동안 존속해 왔으며,사람들은 아직도 그것을 보고 웃고 있음이 판명됐다.』 미국(美國)의 정치가이자 법학자며 법무장관을 지낸 윌 로저스가 1950년대에 남긴 말이다.
후진국이나 독재국가의 의회라면 또 몰라도 그런대로 의회민주주의가 정착돼 있다고 믿어지는 미국의 의회를 희극 공연장에 비유한 발상이 재미있다.의회정치가 제아무리 진지하고 엄숙하게 이루어진다 해도 국민들이 그를 보고 웃는다면 희극일 수밖에 없다는뜻이다. 그러나 막상 의회에서「웃기는 일」이 벌어졌다 해도 국민들이 웃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극(悲劇)일 수밖에 없다.바로 로저스 말의 역논리(逆論理)인 셈이다.「날치기」얼룩으로 점철된 우리 국회가 꼭 그 꼴이다.
날치기는 날쌘 좀도둑의 무리를 지칭하는 들치기.소매치기.차(車)치기와 함께 치기배(輩)의 한 유형(類型)이다.국사(國事)를 도맡는등 우리 사회의 가장 존경받아야할 계층인 국회의원들이시정(市井) 잡배(雜輩)들의 단골수법인 날치기를 자행했다면 그것은 희극임이 분명한데도 국민들이 서글픈 눈으로 바라보는 까닭은 무엇일까.두말할 나위없이 의회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파행적(跛行的)행위기 때문이다.
서글픈 눈으로 바라보는 국민들은 그래도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축들이다.모르긴 해도 2일밤의 국회 예산안등 주요 법안 날치기 통과를 바라본 상당수의 국민들은「제버릇 ×주나」「또 그 꼴」 따위를 중얼거리며 무관심한 혹은 냉소적인 표 정을 지었을것이다. 하긴 3共 시절 태평로 국회 제3별관에서 자행됐던 「3선 개헌안 날치기」와 의장이 의석 맨 뒤편에서 손바닥을 두드려 통과시킨「예산안 날치기」,그리고 유신(維新)시절 의원휴게실에서 변칙 통과된 「개정 형법 날치기」등 무수한 국회 날 치기사례들을 돌이켜보면 국민들의 무관심도 새삼스런 것이 아닐는지도모른다.문제는 그때와 지금은 다르지 않느냐는 일반적 인식 속에들어있다.수법이나 행태가 똑같이 되풀이된다면 말그대로의 「문민정치」가 부끄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