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프로 세계로 뛰어든 ‘대학생 투자 고수’ 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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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더 이상 아마추어가 아니다. 프로 세계에 뛰어든 미래의 ‘워런 버핏’들이다. 펀드매니저가 되기 위해 한국밸류자산운용에 입사한 대학생 투자 고수 출신들이 포즈를 취했다. 오른쪽부터 홍진채·정용현·장동원·강대권·정신욱·정재원.

서울대·연세대·고려대 투자동아리 회장 출신을 비롯한 대학생 투자 고수들이 현실 투자세계로 들어왔다. 그것도 한 신생 자산운용사(한국밸류자산운용)의 신입사원으로 변신했다. “한국의 워런 버핏을 꿈꾼다”는 예비 펀드 매니저들이지만 대학 시절에 이미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투자 실패를 경험했다. 자산운용업계에 막 발을 내디딘 초짜들이지만 이미 상처에는 단단하고 딱딱한 딱지가 앉았다. 내공이 보통이 아닌 그들을 13일 만나봤다.

▶강대권=우유는 3일을 생각하고 사면 된다. 펀드는 1∼3년을 보고 선택한다. 직장은 20∼30년은 봐야 한다. 투자는 내가 해 본 일 중 가장 신나는 일이다.

▶정재원=일반 회사에 들어가면 투자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길을 택했다. 대학 시절 가치투자 동아리를 만들었다. 2년 전에는 주변 사람들을 꼬여 3000만원의 투자자금을 만들어 ‘J2K’라는 사설 펀드도 운용해 봤다. 지난 1년간 시장 대비 5%포인트 정도는 수익률이 앞섰다.

▶홍진채=2003년 말 처음 주식 투자를 시작한 다음 두 번의 매도로 쓴맛을 봤다. 코메론(코스닥 줄자 생산 업체)은 3년간 들고 있다가 주가가 정말 안 움직여 본전에 되팔았다. 팔고 나니까 가더라(※올랐다는 의미). 다른 하나인 CJ엔터테인먼트도 내가 털고 나니까 가더라(웃음).

▶강대권=1999년 투자를 시작했다. 당시 기술주(IT) 기세가 놀라웠다. 그래도 꾹 참고 하이트맥주·보해양조를 샀다. 나중에 남들 다 깨져도 나는 수익을 냈다. ‘투자 천재’라고 뻐기다가 결국 부모님 돈까지 끌어서 현대전자를 샀다. 무려 75%의 손실을 냈다. 그제야 제대로 공부하고 투자하기 시작했다.

▶정재원=2002년 상한가 따라잡기를 하다가 +15%에서 -14%까지 빠지는 걸 경험했다. 미수까지 지른 상황이었다. 죽을 맛이었다. 다 정리하고 그때부터 가치투자라는 걸 배우게 됐다.

▶강대권=주변에서 투자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보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하나만 보고 투자하면 필패한다. 그래도 하나를 꼽으라면 최고경영자(CEO)다. CEO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면 된다. 과거 신문기사를 검색해 보면서 중요한 순간에 이 CEO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가를 봐야 한다.

▶정용현=경쟁력 있는 사업모델(BM)도 중요하다. 남들이 쉽게 따라잡지 못하는 수익모델이 있어야 한다. BM이 좋으면 경영자가 바보라도 기업은 잘 굴러간다.

▶홍진채=10년을 보유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기업인가를 따진다. 투자를 결정한 뒤에는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무엇보다 원칙을 지켜야 한다. 기업가치는 그대로인데 한 달 지나 주가가 30% 빠졌다고, 데드 크로스(※기술적 분석 지표, 매도 신호)가 나타났다고 아무 생각 없이 파는 건 안 된다.

▶정재원=냉정이 필요하다. 내릴 때도 오를 때도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견뎌내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처럼 ‘비이성적으로 과열되는 시장’에서 냉정을 지키기란 진짜 쉽지 않다.

▶강대권=‘자기 부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2002년 거리 응원을 하면서 한국 주식은 무조건 된다고 자기 확신에 빠졌다. 결국 그해 엄청난 손실을 봤다. 끊임없이 자기 논리를 의심해 봐야 한다.

▶장동원=투자를 왜 하나. 다들 부자가 되고 싶어서다. 35세에 벤츠 타겠다고 마음먹지 않으면 된다. 20년 뒤 부자가 되겠다고 생각하면 무리하지 않는다.

▶정신욱=결국 투자의 성패를 가르는 점은 분석 능력보다는 투자에 대한 확신과 인내심인 것 같다.

▶정용현=일단 주식판에 들어온 이상 원칙을 지키는 투자를 하고 싶다. 그래서 한국의 워런 버핏으로 기억되고 싶다.

이 운용사의 이채원 전무는 20년 가까이 증시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뽑아 놓고도 “요즘 애들 보면 무섭다. 나는 그 나이에 뭐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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