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단독이라고 맹탕심의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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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야당의 불참으로 단독 국회를 강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민자당의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민자당이 단독국회를 자랑스럽게 생각할일은 못된다.오히려 야당의 눈총이나 국민의 눈길을 의식해서라도더 조심하고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단독국회에 임 하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여당만의 국회에서 깊이 있는 안건심의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국회의 체통을 생각해서라도 없는 성의라도 있는 것처럼 외양(外樣)이나마 갖추는 노력을 보여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며칠간 단독국회의 모습을 보면 민자당은 이런 최소한의 조심성도 없는 것같다.야당의원이 없다고 안건을 제대로 심의하지 않은채 수박겉하기식으로 넘기는가 하면,대부분 정부안(案)을 수정없이 그대로 통과시킨다는 소식이다.
정 부측에 아첨하는 질문도 없지 않고,혹시 질문다운 질문이 나오면 다른 의원들이 제지하기 일쑤라는 얘기도 나온다.여북하면언론이「맹탕질문」을 한다고 쓸까.
이런 민자당의 풀어진 자세에 정부측 역시 불성실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장관이 회의에 무단불참하거나,의원이 발언하는 동안졸거나 낙서하는 장.차관도 많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부.여당끼리 둘러앉아 국회심의 시늉도 제대로 못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50兆원의 방대한 예산안을 불과 사흘만에 통과시킨다는 민자당의 강행방침이다.법정시한을 지키려면 좀더일찍 심의에 들어갔어야지 심의다운 심의도 못한채 통과시킨다는게말이 되는가.지난 몇년간 법정시한을 별로 지키 지 않다가 단독국회를 하면서 올해따라 유달리 법정시한을 강조하는 것도 어색하다.예산안처럼 중대한 안건을 놓고 왜 좀더 성의있게 심의한다는겉모습조차 보이지 못하고,야당의 참석을 기다린다는 최소한의 정치적 제스처도 못취하는가.
민자당의원들은 당원이기도 하지만 의원이기도 하다.의원이면 의원대로의 책임과 역할이 있는 법인데 이 책임과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생각하기 바란다.졸속.맹탕심의를 했다가 나중에 야당이나 국민에게 허점을 드러내기라도 한다면 민자당 꼴은 뭐가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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