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 기자의 문학터치 <120> 김이듬, 그 외로운 이름에 대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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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시인과 시적 화자는 동일하지 않다. 시적 화자를 시인과 혼동(또는 동일시)하는 건 낮은 수준의 시 읽기다.

나는 그러나, 이와 같이 생각한다. 시인과 시적 화자가 동일 인물이 아니란 이론은, 이론 안에서만 성립한다. 시인이 시를 내다 놓는 건 할 말이 있어서다. 엉뚱한 화자를 내세워 생뚱한 말을 지껄이게끔 해도, 타인에게 말을 걸고 싶은(또는 걸어야 하는) 시인의 진심은 달라지지 않는다. 화자가 난데없는 얘기나 떠벌리는 건, 생면부지의 독자가 어려워서다. 저 깊은 가슴 속까지 선뜻 열어보이기엔 아직 겸연쩍어서다. 시가 난해할수록 시인은 주저하고 망설이는 것이다. 나는 이제, 그렇게 믿기로 한다.

‘그야 김이듬과 프란시스코 드 고야가 오월의 두 번째 날을 말할 때/…/대부분의 미술해부학자는 5월 2일의 경우 반출이 어렵다고 잘라 말하지. 이날 아침부터 수십 년 동안 출산을 진행 중인 지겨워요, 어머니/…/양수가 터지고 폭탄이 터지고 마드리드가 터졌다지’

김이듬(38·사진)의 시 ‘고야와 나의 오월’의 부분이다. 시를 이해하기 위해선 두 가지 정보가 먼저 필요하다. 우선 스페인 화가 고야. 그는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고발한 ‘5월 2일’이란 작품을 남겼다. 다음으론 시인 김이듬. 그는 5월 2일 태어났고, 어려서 어머니와 헤어졌다.

위 작품은 김이듬이 이태 전 펴낸 첫 시집 『별 모양의 얼룩』에 실려있다. 시집은 나오자마자 화제에 올랐다. 낯설고 수상했지만, 하여 공감 따위의 감상은 쉬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김이듬이란 이름은 유령처럼 시단을 떠돌았다. 김이듬의 시를 말하는 이는 여럿이었지만, 김이듬을 말하는 이는 드물었다. 얼굴을 좀체 비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주 김이듬의 두 번째 시집 『명랑하라 팜 파탈』(문학과지성사)이 나왔다. 시인이 머무는 경남 진주로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그러고나서 알았다. 시인은 변변한 시 수업을 받은 적이 없다. 유독 낯을 가리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하룻밤 신세질 사이가 마땅치 않아 상경해도 버스 막차시간을 맞출 따름이다. 생일이 5월 2일이고, 어려서 어머니와 헤어져 보육원에서 산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는, 술자리에서 왼손으로 젓가락을 집었다.

‘나는 십 원짜리를 주워 모아 봉헌할 게 있는 소년처럼 보육원으로 돌아갔고 숟가락을 오른손으로 바꿔 쥐며 눈치를 살폈다 오른쪽 손은 의수 같아서 촛불에 데어도 빨리 못 피했다 원장 아버지가 선창하는 찬송가 책을 넘기면 왜 모든 책장은 불편한 방향으로 넘겨야 하는지 왜 모든 시계와 문고리까지 반대로 돌아가는지’(‘왼손잡이’ 부분)

겨우 몇 마디 들었지만, 시집 펼쳐놓고 함께 읽은 것도 아니지만 시는 한결 순해졌다. 이를 테면 다음의 시구 앞에서 나는 지금 편안하다.

‘버림받은 어린 딸이 엄마를 찾아가는 것은 별이 뜨는 이유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시를 쓴다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유령 시인들의 정원을 지나’ 부분)

시집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 ‘팜 파탈’을 제목에 넣은 이유도 지금은 알겠다. 시인은 요부(妖婦)라 번역되는 게 싫었던 거다. 요사스럽단 판단은 오롯이 남자의 것이었다. 여자는 그저 열심히 살 따름이었다.

시인은 앞자리 사람을 빤히 쳐다보다 불쑥 물었다. “행복하면 시를 쓰겠어요?” 때론 시인을 알아야 시를 알 수 있다. 이제 나는, 그렇게 믿는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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